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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책 읽기

치우천왕기 1 <형제> / 이우혁 _ 문학동네, 2011년 5월 7일 출간.

대출일 : 2014년 03월 22일  , 반납일 : 2014년 04월 05일.

'비상하는 매'를 그냥 반납하고 '치우천왕기'를 빌려왔다.
'얼음과 불의 노래' 2부를 기다리며 여유있게 읽기 위해 1권만 빌려왔다.
본문 내용이 611쪽이나 되어 보통의 다른 책 보다 두껍다.

여유있게 읽을려고 했는데...책의 두께를 보니 부지런히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속으로...

"치베는 우리 보돈차르족에서 활쏘기와 말타기에는 으뜸가는 용사다. 더구나 주신 말도 할 줄 안다.
앞으로 치베는 자네들이 큰 뜻을 이룰 때까지 나를 돕듯 자네들을 도울 것이다.
자네들은 치베에게 몽골족의 기술을 배우고, 자네들의 기술을 치베에게 가르쳐라. 때가 되었다 생각되면 그때 돌려 보내 달라."
나래가 어떻게 할 생각하고 있는데 희네가 대신 나섰다.
"치베도 안다로 맞아 같이 다니도록 하겠다."
그 말에 치베가 뛸 듯이 기뻐했다. 보돈차르와의 만남을 일단 끝낸 희네와 나래는 치베를 데리고 막사로 돌아왔다.

먼 훗날의 일이지만 치베(철별)는 몽골족의 영웅이 된다.
그로부터 몽골인은 활 잘 쏘는 이를 가르켜 '치베'라고 말하거나 그 이름을 붙이게 된다.
그리고 보돈차르는 자신의 부족을 몽골족 제일의 부족으로 만들고
몽골 제일의 영웅이자 시조로서 영원히 몽골인의 마음에 새겨지는 업적을 쌓게 된다.
삼천구백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보돈차르의 후손 중 천하를 제패하는 자가 나오는데, 그가 바로 칭기즈 칸이다.
그리고 칭기즈 칸이 평생 마음속으로 가장 존경하고 숭배했던 이가 바로 시조인 보돈차르였다.


그런 와중에도 희네는 몇몇 부족의 젊은이들을 눈여겨 보아 두었다.

키탄족 울크리 부족의 야율쿠리라는 젊은이는 키가 크고 힘이 세면서도 용감하여 키탄족 젊은이들의 우두머리로 꼽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울크리 부족장의 세 번째 마누라에게서 난 아들이라 부족장 자리를 물려 받지는 못할 것이라 했다.
야율쿠리는 그 때문에 비관하여 매일같이 술을 퍼 마셨는데 그러다가 희네와 나래를 만났다.
희네는 야율쿠리의 용감한 얼굴을 기억에 잘 담아 두었다.

또 마캬르족 중 친두 부족에는 울쿠타와 야쿠타라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는데, 특별히 힘센 청년들은 아니었지만 나무가 빽빽히 들어 선 숲속을 빨리 달리기에는 비할 자가 없었다.

눈이 밝고 몸 빠른 나래마저도 이 쌍둥이에게 숲 속 달리기에서 져서 곰 가죽 한 필을 빼았겼다.
이 젊은이들도 그리 좋은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친두 부족이 데리고 있는 노예의 아들이었다.
친두 부족장은 이들을 전령으로 부리려고 데리고 온 것이었다.

타타르족인 앗수라트 부족의 막사에서도 희네와 나래는 기이한 사람을 한 명 보았다.

울라트라는 이름의 열 살도 안 된 어린 소녀였다.
아주 야리야리하게 비적 마른데다가 걸을 때에도 어디가 아픈 것처럼 휘청 거리며 걸어 가련해 보였다.
울라트는 눈이 몹시 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한 듯 했고, 실제로 눈이 아주 좋아 독수리보다 더 잘 볼 수 있다고들 했다.
울라트는 앗수라트족 부족장의 딸로, 몹시 수줍을을 타서 누가 말을 걸기만 하면 천막으로 도망쳐 숨어 버렸기 때문에 이야기를 건넬 수 없었다.

미아우족의 막사에 갔을 때 희네와 나래가 툰툰을 안다고 이야기를 하자 미아우 사람들은 희네와 나래를 환대했다.

그중 키가 훤칠하고 사납게 생긴 청년이 특히 툰툰을 잘 안다고 하여 희 나래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나중에 이름을 듣고 보니 여자 이름이었다.
나래가 의아해 하자 청년이 껄껄 웃으며서 자신은 사실 여자라고 말했다.
희네와 나래는 놀랐다.
그녀의 이름은 초초룬이었는데, 어디를 보아도 여자 같은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마른 남자 같았고 남자치고도 거친 남자로 보였다. 수염은 없었지만.
희네와 나래가 반신반의하자 초초룬은 못 믿겠으면 벗어 보겠다고 화를 내어 희네와 나래는 괜찮다며 그녀를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기분이 좋아지자 초초룬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의 휘파람 소리는 맑고 듣기 좋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휘파람에는 모든 벌레들의 제왕인 '타타츄이트'의 기운이 깃들어 있어 어떤 벌레든지 휘파람으로 불러낼 수 있으며 도망치게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한웅의 뒤를 따르던 네 채의 가마에는 바로 풍백(風伯), 운사(雲師), 우사(雨師)의 삼사와 사와라 한웅의 여섯 번째 작은 마누라가 각각 타고 있었다.

지금의 한웅은 사와라 한웅이고 풍백은 비렴, 우사는 병예라는 나이 많은 노인이었다.
운사는 신지울태라는 할머니였고, 한웅의 마누라는 부루 집안의 버들이라고 했다.


"당신이 정말 자부 선인이건 아니건 나는 말 하겠습니다.

저는 선인도 아니며, 하늘의 도리를 깨달은 잘난 사람도 아니지만,
아무리 작아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니 옳게 해야 하고, 아무리 큰 까닭이 있어도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니 그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저 아이가 세상의 재앙이 된다 하지만, 세상의 재앙이 될 인간이 왜 태어나겠습니까?
하늘이 그런 인간을 낸다면, 그 아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세상을 망하게 할 것 아니겠습니까?
저 아이가 사람들에게 내린 하늘의 시험이라면 왜 그것을 하늘의 시험대에 맡기지 않고 선인인 당신이 감추어 두려는 것 입니까?
사람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한다면 왜 사람을 믿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람에게 주어진 힘든 일도 사람의 힘으로 해 나가야 하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그 힘든 일을 너희가 해야 하다 해도?"
그러자 희네는 늠름하게 말했다.
"바라는 바 입니다."
"네 다리는? 네 목숨은? 네 아우의 운명은?"
"주어지는 대로 해 나가겠습니다."
"너희는 내 손가락 하나도 당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하겠다고?"
"내가 죽어도 수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뜻이 중요한 것 입니다. 목숨이 다해도 뜻이 남으면 사람은 무엇보다 강합니다.
사람 하나는 약하더라도 사람들은 선인이나 신수보다도 강합니다!"
희네가 낭랑하게 외치자 자부 선인은 웃으면서 손뼉을 짝짝 쳤다.
"훌륭하구나. 내 너에게 배웠느니라. 그래, 사람의 일은 사람에게 맡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하게 가치 있는 일이니라. 그것이 진정한 하늘의 뜻인지도 모르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자부 선인이 다시 말했다.
"여자 아이는..."
희네가 단호한 목소리로 자부 선인의 말을 막았다.
"맥달 입니다. 이름을 지었으니 그리 불러 주소서."
"아, 맥달이라 이름 지었느냐? 그래... 허허. 맥달은 내 돌려 보낼 것이니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만나게 될 것이니라."
"왜 그렇습니까?"
"네가 바라는 대로 사람답게 만들어 보내야 할 것 아니겠느냐? 그 때문에 네가 화를 낸 것 아니더냐? 하하하..."


주신의 삼사는 각각 풍백, 운사, 우사라고 불린다.

풍백은 법과 질서의 수호자이고, 우사는 지혜로운 조언자이자 점술사이며 운사는 대주술사다.
풍백은 강한 전사를 배출하는 치우씨와 비씨 집안에서 주로 나오고,
운사는 주술사를 배출하는 고시씨나 신지씨, 간혹 부루씨 집안에서 맡지만
우사는 능력에 따라 누구든 될 수 있다.


그러자 희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큰 까닭이 있어."
"그건 뭔가?"
"내가 거짓말을 시키기는 하지만 난 거짓말쟁이가 싫거든."
그 말에 모두 와, 웃었다.
초초룬은 아예 허리를 부여잡고 한참 웃다가 입을 열었다.
"희네여, 너 정말 웃기는구나. 하하하."
희네도 따라 웃었다.
"난 원래 거짓말을 아주 싫어해. 거짓말은 해선 안 되지만 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지. 하지만 할 수 없이 하는 거짓말이라도 지킬 건 지켜야 해.
거짓말도 다 같은 거짓말이 아니야. 좋은 거짓말이란 없고, 안 하면 안 할 수록 좋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을 때는 두 가지만 지키면 돼."
"어떤 두 가지?"
"첫 째로 없었던 일을 지어서 만드는 거짓말은 안 돼.
두번 째, 거짓말로 누구에게 손해를 끼쳐도 안 돼.
많이 생각해 보고 그럴 수 있을 때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많이 생각했는데, 이 두 가지만 지킨다면 비록 거짓말을 해도 하늘에 그리 부끄럽지 않을 거야. 내 벗들도 그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어."



젊고 힘센 사내들이 땅도 갈지 않고 나무도 베지 않으며 짐승도 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싸움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지만, 대신 다른 모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지켜야만 한다.
그들이 바로 사울아비이다.
그들은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깊은 책임을 느끼며 자신의 일에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형제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였다.
아우는 아픈 형을 업고 산등성이를 돌아 다녔다.
잘 돌아 다니지 못하는 형이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해서였다.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널찍이, 아득한 지평선만이 맞닿아 보이는 대평원을 내려다 보면서 형이 말했다.
'아우야, 저 하늘을 보거라. 하늘하고 땅이 닿아 있구나. 그렇지?'
'응.'
'저렇게 한님은 땅에 가르침을 내리셨고 거기서 우리 주신이 시작되었겠지. 안파견 한님은 하늘에서 내려 오신 분이야. 저것을 보면 알 수 있어.'
'응.'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저 땅에 닿은 하늘.'
'응.'
'높은 데만 있지 않고, 높으면서도 땅에 닿아 있는 저 하늘 말야.
안파견 한님은 높고도 귀하지만, 나는 그런 하늘이, 저렇게 땅을 안아 주고 보듬어 주는 그런 하늘이 좋아.
나는 말야, 나중에 성인식을 하면 이름을 천이라 지을 거야. 치우천!'
'천이 무슨 뜻인데?'
'우연히 알게 되었어. 천은 말야, 뜻글자로 하늘이란 뜻이래.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지만 천은 하늘이란 뜻이래.'
'아이구! 형! 이름에 다른 건 다 들어가도 하늘은 들어가선 안돼! 한님이 하늘님인데 그걸 이름에 썼다간 큰일 나!'
'그래도 난 쓸거야. 난 꼭 그 이름을  쓰고, 반드시 저 하늘같이 될거야.'
'아이구...'
'아우야. 너는 이름을 비라고 지어. 치우비. 날아 다닌다는 뜻이래.
지금 네 이름도 나래니깐 딱 맞는 이름이야. 그래서 말야, 내가 하늘이 될테니 너는 그 하늘에서 훨훨 날려무나. 마음대로 말야.'
'그럼 좋겠네. 하하하...'
'그렇게 될 수 있을거야. 하하하...'


"형이 죽는다... 형이 죽는다."
치우비의 눈에 핏발이 솟았다. 치우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쇠돌이와 야율쿠리, 치베와 부루벼락이 눈물을 흘리며 치우비를 만류했다.
그래도 치우비는 일어섰다.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엄청난 장사며 용사인 그들도 한꺼번에 와스스 떨어져 나갔다.
치우비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싸름판 위로 오르려  했다.
주신이 지건, 망하건, 세상이 뒤집어져도, 세상 모든 사람과 싸우게 된다 해도 형이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치우천은 조용히 웃으며 서 있다가 치우비를 돌아 보았다.
눈빛이 치우비를 향했다. 치우비는 순간, 멈칫했다. 치우천은 낭랑하게 말했다.
"아우야, 미안하다만 내게 맡겨 다오."
치우비는 미칠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형 말을 거역 한다는 것은 상상해 본 일도 없었다. 그리고 형은 저렇게 유유히, 태연히 서 있지 않은가?
형에게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일을 그르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형... 형님은...
그 순간 조용하도고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끽구, 네가 졌다. 물러 서거라."
헌원의 목소리였다.

치우천은 말없이 헌원을 올려다 보았다. 헌원도 치우천을 바라 보았다.
헌원은 치우천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따뜻한 눈빛을 보냈고. 치우천은 헌원에게 아무도 모르게 살짝 인사를 보냈다.
둘은 말 한 마디 없었고 같이 있지도 않았지만 서로를 잘 안다고 느꼈다.
헌원은 눈으로 말했다.
'네가 끽구를 이겼다. 네 용기가 이긴 것이다.'
치우천 역시 눈으로 말했다.
'진정 이긴 것은 나도, 끽구도 아닙니다. 당신이군요.'

그러나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부족장이나 부족에서 알려진 자들이다.
보통보다는 머리가 더 돌아가고 느낌이 있는 사람들이니만치 그들에게는 헌원의 모습이 깊이 인상에 남았다.
시합에 쏠린 눈과 귀가 많았던 만큼 그 순간 헌원의 모습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듯 했다.
사와라 한웅보다 훨씬 강렬한 존재감을 주었다.
치우천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텅 빈 것 같은 심정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헌원은 대단한 사람이다. 놀랍다.'

헌원은 멋지게 승리했다.
시합에서는 졌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했고, 추한 꼴을 보이지 않게 했으며 사람들에게 치우비나 자신이나 끽구보다도 깊은 존재감을 남겼다.
'진짜 이긴 사람은 헌원, 당신 입니다.'
치우천은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외쳤다. 헌원의 거대함이 자신을 완전히 압도했다.
항상 크다고 자부하던 자신이 쪼그라들어 작아졌다.


"좋은 사울아비도 많다는 것을 아네. 자네들도 그렇고, 여기 있는 젊은이들은 정말 훌륭하네. 그러니 주신이 제일 센 부족으로 지금까지 남을 수 있겠지. 그러나 나쁜 녀석들이 더 많은 것 같네. 그런 자들은 자네들처럼 올바른 자들을 두려워하고 해치려 하네. 올바른 자들로 인해 자기들의 더러움이 보이기 때문이지. 자네들도 조심하게. 밖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화살보다 안에서 찌르는 무딘 칼이 더 무서울 수도 있는 것일세.
주신 사람들은 똑똑하고 끈기 있으며 부지런하네. 좋은 점이지. 그러나 그만큼 건방지고 자기들만 알고 고집이 세다는 나쁜 점도 있다네.
자네들 아버님은 처음 뵈었지만 훌륭한 분이네. 자네들은  아버지 덕에 세상의 더러움을 겪지 않고 살아 왔을 것이네.
이제는 자네들오 어른이니 알아야 한다네. 내 말을 무례하다 생각 말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네."
현명하고 지혜로운 말이었다.

그때 몽골의 영웅인 보돈차르가 말했다.
"치우천 안다, 치우비 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주신을 세우신 안파견 한님이 얼마나 오래 전 분인지는 모르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 분이라고 들었다. 맞는가?"
"그렇습니다. 여러 천 년 전입니다."
치우천이 간신히 대답하자 보돈차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신은 오래된 나라다. 그러니 그 만큼 썩은 것이다. 내 솔직히 말 하겠다. 몽골족도 그러하다. 몽골족도 수가 많고 사람들은 억세며 강하다.
주변의 어느 부족보다 말도 잘 달리고 활도 잘 쏜다. 그러나 몽골은 약하다. 서로 쪼개져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몽골의 푸른 늑대가 처음 후손을 낳아 세운 부족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새 부족을 세웠다."

"무엇이든 오래되면 상하고 비뚤어진다. 물도 고여 있으면 썩고, 고기도 내 버려 두면 벌레가 우글 거린다.
주신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아주 크고 힘 있고 강한 나라다.
그러나 주신은 내가 볼 때 너무 묵었다. 묵으면 오래된 관습이 생기고 관습에 기대는 쥐새끼들이 들끓게 된다. 지금 주신이 바로 그런 때다.
치우천 안다, 자네는 유망이 이끄는 지나족이 왜 주신을 거역하려는지 이해 하겠는가?
어째서 가장 강한 주신을 감히 거스를 용기가 생겼는지 이해 하겠는가?"
치우천은 평정을 되 찾고 대답했다.
"이제 알겠습니다."
"그럼 자네에게 묻겠네. 주신은 아직 누가 뭐래도 가장 강한 부족일세.
어째서 강한 부족인가? 구리를 만들 줄 알아서? 신시가 가장 큰 도읍이라서? 사울아비가 용감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다른 부족들과 뭉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뭉친 것인가?"
"안파견 한님의 가르침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느 것이었습니다.
주신은 다른 부족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늘 앞장서서 다른 부족을 돕고 그로 인해 제일 큰 부족이 되었습니다.
다른 부족을 정복하지 않고도 다른 부족을 정복한 것보다 나았습니다. 모두에게 좋았습니다."
"그렇다네. 내가 주신에 감탄하는 것은 바로 그것일세. 나는 안파견 한님을 믿지 않네만 훌륭한 분이었다고 생각하네.
눈앞만 보는 자들은 이리 생각하네. 다른 부족을 도와서 무엇이 남는가? 우리 사람만 죽이고 우리 재물만 축내지 않는가? 하고 말일세.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닙니다. 그런 것보다 더 큰 얻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신을 믿게 되고, 주신과 친구가 되어 싸울 일이 없어 집니다.
가진 지식과 재주를 나누고 그것이 주신으로 모입니다. 그래서 주신은 제일 앞서고 잘 사는 부족이 되었습니다."
"주신이 가장 강해 졌지만, 다른 부족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다른 부족은 다른 부족 그대로 남게 하는 것이 주신의 힘 입니다.
어느 부족도 재주 없는 부족은 없습니다. 그 재주는 다른 부족이 결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들이 주신을 강하게 하고, 다시 다른 부족을 강하게 합니다. 모두가 강해집니다."
"바로 그것일세. 자네는 나와 생각이 같네. 당장 얻을 것만 생각하는 버러지들은 그런 점을 모르네.
그저 나만, 자기 배만 부르고 종을 많이 부리면 그만이지. 다른 것은 생각할 줄 모르네.
그것이 부족을 진정 위하는 것과 부족을 좀 먹는 것의 차이일세..."

"나는 몽골 사람이네. 우리는 주신 사람과 다르며, 푸른 늑대의 가르침 또한 다르네. 사는 땅이 다르고, 사는 법이 다르며, 사람이 다르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가르침을 만들고 깨달아 가야겠지. 그것은 내 일일세.
하지만 자네들 주신의 안파견 한님의 가르침은 실로 배울 점이 많지.
몽골에 이런 이야기가 있네. 좋은 말도 달리지 않으면 배가 늘어지고 강한 활도 조이지 않으면 늘어진다고.
주신은 오래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내 온 것일세. 이제 지나족이 주신을 위협하고 있네. 주신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을 것일세. 그러나..."
보돈차르는 치우천의 눈을 바라 보았다.


"그 일은 반드시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부족을 세우지 않습니다. 저는 안파견 한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믿으며 자라났고, 그 가르침이 잘못 되엇다고 당장 새로운 가르침을 만들거나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러려면 시간이 부족 합니다!"
치우천의 말에 보돈차르가 놀랐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시간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보돈차르는 치우천이 그런 가르침을 만들고 사람을 모아 새 부족을, 새 나라를 건설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을 알아 들었다.
주신만큼 큰 부족은 치우천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살아서는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보돈차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자네... 뜻은 내 생각보다 더 크군."
"별 말씀을."
"새로 키우기보다는 있는 것을 바꾸는 편이 낫다는 말인가? 낡은 그릇도 고치면 쓸 만한가?"
보돈차르가 묻자 치우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렇게 만듭니다."
"얼마나 오래 가기를 바라는가? 자네가 고친 새 그릇은 얼마나 가겠는가?"
보돈차르가 눈을 형형히 빛내며 또 다시 묻자 치우천도 그 만큼 밝은 눈빛으로 말했다.
"그릇이 생각보다 낡은 것 같아 애초에 생각했건 만큼 오래는 못 가겠군요."
"그래, 얼마라고 생각하나?"
"잘해야... 천년!"
아직 만이란 단위가 쓰이기 전의 일이다. 그런 시절에 천 년이란 엄청났다. 치우천의 그릇 크기에 보돈차르는 또 한 번 놀랐다.
"정말인가?"
"해낼 것 입니다."
"그 그릇은 하나를 위한 그릇이 아닌, 모두가 섞여 있는 그릇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지나족과 마찬가지 입니다. 지나족도 큰 부족이지만, 그릇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지나족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지나족의 그릇은? 헌원의 그릇은 자네 못지않다."
"지나족의 그릇은 지나족 하나만의 그릇입니다."
보돈차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나는 자네를 믿네! 치우천 안다! 자네는 이전에도 나의 안다였고 보돈차르족의 벗이었지만, 이제 자네는 보돈차르족 전체의 목숨을 맡았네. 자
네가 말만하면 보돈차르의 모든 활과 말은 물속이나 불구덩이 속이라도 달려 들어가리!"




'치우천왕기 1권'을 3월 27일_ 목요일에 다 읽었다. 다음 날에 반납.


처음 책을 접하는 사람은 본문 뒷편에 따로 적어 놓은 주요 등장인물의 간략한 소개글,
시대적 배경과  설정을 설명한 글을 미리 읽고 나서 본문을 읽으면 보다 이해가 빠를수가 있을 것 같다.

치우천과 치우비의 어린 시절을 그려낸 이야기.
두 형제의 어린 시절의 영웅담을 그려낸 소설.

치우천의 지혜와 지식, 치우비의 뛰어난 무예.
주변 부족또는 부족장들의 친구와 동료.
이들은 치우천의 세상을 향해 함께 할 사람들.

성인이 되기전 부터 안파견 한님이 세운 주신_ 변질이 되어 버린 주신이 아니라 _ 본래의 주신의 모습을 꿈 꿔 왔던 치우천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