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3권...
캐틀린은 그림들을 바라 보았다. 수염이 난 성부, 자애로운 미소를 띤 성모, 검과 망치를 든 전사와 대장장이의 신, 자태가 곱고 아름다운 미의 여신, 쭈그렁이지만 지혜로워 보이는 노파 신, 일곱 번째 이방인의 신. 한데 이방인의 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미지의 방랑자. 캐틀린은 그 마지막 신의 그림이 영 마음에 걸렸다. 셉트에 왔지만 역시 마음의 위안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캐틀린은 성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시여, 이 전쟁을 굽어 살펴 주세요. 그들은 모두 어머니의 아들들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제 자식들, 롭과 브랜과 릭콘도 보호해 주세요. 제가 그들 곁에 있게 도와 주세요."
…
캐틀린은 두 손을 꼭 쥐었다. 브랜을 해치러 온 암살자와 싸우다 베였던 흉터가 당겼다.
'세상에, 브랜도 알고 있었던 거야! 그 애는 뭔가 봤거나 들었던게 틀림없어. 그래서 그 애를 죽이려 했던 거겠지.'
캐틀린은 대장장이의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하는 아들 브랜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미의 여신 앞으로 가 아리아와 산사에게 담대함을 주고, 그들의 순결을 지켜 달라고 빌었다. 성부에게는 정의를 찾을 힘과 지혜를 달라고 빌고, 전사의 신에게는 롭을 강하게 붙잡아 주고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손에 등불을 들고 있는노파 신 앞으로 갔다.
"지혜로운 신이여, 저를 인도해 주세요. 제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시고, 제 앞에 놓여 있는 어려움 앞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해 주세요."
브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젠이 단호하게 말했다.
"워그(Warg)입니다."
브랜은 낯선 용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요? 워그?"
"네, 워그요. 꿈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왕자님을 그렇게 부를 겁니다. 야수로 변하는 인간, '비스틀링(Beastling)'을 뜻하지요."
브랜은 두려움에 휩사였다.
"누가 날 그렿게 부른다는 얘기죠?"
"왕자님의 친척분들이요. 사실이 밝혀지면, 왕자님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생길 겁니다. 죽이려 드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
"아니요, 난 워그가 아니예요. 그건 꿈일 뿐이라구요!"
"왕자님, 그건 단순한 꿈이 아닙니다. 평소 왕자님께서 감고 있는 세 번째 눈이 잠이 들면서 떠지는 겁니다. 왕자님의 영혼은 지금 감춰진 본성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왕자님 안에 있는 그 힘은 강력 합니다."
"난 그런 거 원치 않아요. 난 기사가 되고 싶다구요."
"기사는 왕자님의 꿈이지만, 워그는 왕자님 자신이에요. 왕자님께서 원치 않는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죠. 아무리 부정해도 소용 없습니다. 왕자님은 날개 달린 늑대이면서도 결코 날지 못할 겁니다."
조젠이 천천히 일어나 브랜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왔따. 그러고는 두 손가락으로 블내의 이마를 쿡 찔렀다.
"감고 있는 이 세 번째 눈을 뜨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는 눈을 어떻게 뜨라는 거죠?"
"손가락으로 절대 찾을 수 없는 눈이죠. 왕자님께서 직접 마음으로 찾으셔야 합니다."
조젠의 초록색 눈이 브랜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두려우세요?"
"루윈이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니까 두려워할 것 없다고 했어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뭐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꿈에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진실이 있습니다."
조젠의 말은 브랜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티리온의 맞은 편에 앉은 브론이 닭의 날개를 쭉 찢어 입에 가져갔다. 티리온은 지금껏 브론의 뻔뻔스러운 행동을 모두 모른 척해 왔지만, 오늘밤에는 짜증이 치밀었다.
"브론, 저녁식사를 나눠 먹자고 한 적 없는데?"
"드실 것 같지 않아서요. 도시 전체가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음식을 버리는 것은 죄악입니다. 혹시 포도주는 없습니까?"
브론이 입에 가득 고기를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다음에는 나보고 아예 따라 달라고 하겠군.'
문득 슬픔이 밀려 들었다.
"브론, 자네는 선을 너무 많이 넘었어."
"티리온 경께선 너무 선을 넘지 않으십니다."
브론이 살을 다 발라먹은 뼈를 바닥에 휙 던지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한마디 던졌다.
"토멘 왕자가 먼저 태어 났더라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거라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십니까?"
브론의 손은 또 다시 닭의 가슴살을 뜯고 있었다.
"누나를 보내며 훌쩍 거리던 그 왕자 말입니다. 그는 훌륭한 왕이 그렇듯, 시키는 대로 뭐든 할 것 같았습니다."
티리온은 등골이 오싹했다.
'토멘이 왕자가 된다면...'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니, 절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돼!'
조프리는 그의 피가 섞인 혈육이자, 세르세이와 자이메의 아들이었다.
"그런 말을 하다가 목이 달아날 수도 있네."
하지만 브론은 티리온의 말에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바리스가 안 되겠는지 중재에 나섰다.
"자, 두 분, 말싸움은 결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발 진정하세요."
"그럴까요?"
티리온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티리온의 '몇 가지 계획'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미래의 계획이 될 것 같다.
숨겨 논 여자도 하나의 약점이 될 수도...
"그렇소. 성벽밑을 통해서 들어왔소.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소. 곳곳마다 물 속으로 격자문이 설치디어 있으니까. 그 사이는 어린 아이도 빠져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좁소."
문득 부드럽게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치솟아 올랐다.
갑작스런 빛에 다보스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리면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멜리산드레가 입고 있던 망토를 벗더니 어깨를 움직여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마저 벗어 던졌던 것이다.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멜리산드레의 배가 산처럼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숨을 들이 쉴 때마다 가슴이 출렁 거리면서 부풀어 오른 배가 금세라도 터질 것처럼 보였다.
"신이시여, 우리를 보호해 주소서."
다보스는 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멜리산드레가 목구명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눈동자가 뜨겁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이글거리고, 땀방울이 온몸에 흐르며 그 자체로 빛을 발했다. 한 마디로 멜리산드레는 빛나고 있었다.
멜리산드레가 숨을 헐떡이며 다리를 벌리고 주저 않았다. 허벅지 사이로 잉크보다 까만 피가 흘러 내리고, 고통과 쾌락에 찬 울부짖음이 어둠 속으로 울려 퍼지더니, 검은 머리 하나가 멜리산드레의 몸을 헤집고 나왔다. 이어서 나온 검은 두 팔이 고통으로 떨고 있는 멜리산드레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몸이 완전히 빠져 나올 때까지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멜리산드레의 몸 밖으로 나온 것은 거대한 그림자였다. 그것은 아주 잠깐 사이에 격자문의 틈새를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보스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림자가 덮칠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았기에...
누구지? ' 스타니스'인가?
늙은 곰이 입을 떼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듯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신들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그럼, 데려갈 형제들을 고르게나."
코린이 고개를 돌리자 존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 한참을 바라 보았다.
"좋습니다. 전 존 스노우를 데려 가겠습니다."
모르몬트는 눈이 동그래졌다.
"존은 아직 어린애야. 그리고 내 집사이지 레인저가 아니야."
"톨렛이 돌봐 드릴 것 입니다, 로드커맨더."
코린이 손가락이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손을 들어 올렸다.
"월 너머에 있는 신들은 예전부터 그랬지만 여전히 엄청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퍼스캔과... 스타크 가문의 신들도요."
모르몬트가 존을 바라 보았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가겠습니다."
존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모르몬트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럴 줄 알았다."
존이 코린을 따라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는 벌써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로 바람이 휘몰아 치면서 검은 외투가 휘날렸다. 바람을 따라 타다 남은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후에 떠난다. 네 늑대를 빨리 찾아보는 게 좋겠구나."
티리온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경, 왜 그러십니까?"
바리스가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리온은 잠자고 있는 도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바리스 경, 재미있지 않소? 스톰엔드는 함락되었소. 스타니스는 군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진군해 올 거요. 그들의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는 그들을 막을 자이메 형도, 로버트 왕도, 라예가르도, 꽃의 기사도 없소. 오직 나뿐이오. 사람들이 경멸하고 미워하는 나뿐이란 말이오."
티리온은 다시 한바탕 웃었다.
"난장이에다 원숭이처럼 다리가 휜 꼬마 악마만이 그들과 혼돈 사이에 서 있는 유일한 존재란 말이오."
그러면서 그가 아리아의 팔을 들어 올리고 뺨에 작은 동전을 하나 갖다 됐다.
"자, 받아."
"이게 뭔데요?"
"아주 귀한 동전이야."
아리아는 동전을 깨물어 보았다. 강철처럼 단단했다.
"이거 하나면 말도 살 수 있어요?"
"이건 말을 사기 위한 게 아냐."
"그럼 뭐할 땐 쓰는 건데요?"
"그 얘긴 삶과 죽음이 뭐냐고 묻는 거랑 똑같아. 나를 찾을 일이 있으면 브라보스에서 온 아무에게나 이 동전을 주면서 '발라 모르굴리스'라고 말해."
"발라 모르굴리스."
어렵지는 않았다. 아리아는 동전을 꼭 쥐었다. 뜰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가지 마세요. 자켄."
자켄은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자켄은 애리처럼 죽었어. 그리고 나는 지킬 약속이 있어. 발라 모르굴리스, 다시 말해봐."
"발라 모르굴리스."
자켄의 옷을 입은 낯선 남자는 아리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망토를 휘날리며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사라졌다.
대니에게는 드래곤, 스타니스에게는 멜리 산드레, 아리아에게는 자켄, 존에게는 늑대...
4권...
리크는 말에서 내리더니 테온에게도 내려 오라는 신호를 했다. 테온이 땅에 내려서자 리크가 윈터펠에서 가져 온 자루를 열어 보였다.
"여길 좀 보십시요."
어두워서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테온은 손을 자루 속으로 집어 넣어 안을 더듬었다. 날카로운 바늘이 손을 찌르면서 차갑고 딱딱한 물건이 손에 잡혔다. 그것은 은과 흑옥으로 만든 늑대머리 장식 핀이었다. 마침내 모든 게 확연해졌다.
테온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겔마르, 아가르, 레드노즈, 나와 함께 가자. 나머지는 사냥개들을 이끌고 윈터펠로 돌아가라. 이제 더 이상 사냥개는 필요 없다. 브랜과 릭콘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았으니까."
"테온 왕자님."
루윈이 황급히 그를 불렀다.
"왕자님께서 약속한 것을 기억하시죠? 분명 자비를 베푼다고 하셨습니다."
"자비는 오늘 아침에나 베풀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자식들이 나를 화나게 하기 전에 말이야."
존은 등 뒤에서 롱클로우를 뽑았다.
"두려운가?"
"어젯밤에는 두려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태양이 떠 올랐잖아요."
이그리트가 머리를 한 쪽으로 모아 목을 드러내고 존 앞에 무릎을 끓었다.
"추우니까 빨리 끝내줘요."
존은 손에 힘을 주며 롱클로우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있는 힘을 다해서 한 번만 내리치면 끝나는 거야. 난 아버지의 아들이잖아.'
이그리트에게 고통 없는 죽을믈 선사해 주고 싶었다.
"어서 해요. 나도 언제까지나 용감할 수는 없다구요."
이그리트가 재촉했다. 하지만 존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여자는 의아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존은 롱클로우드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가."
이그리트가 멍하니 존을 쳐다 보았다.
"어서 가, 달아 나라구. 내가 마음을 고쳐 먹기 전에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사랑 받기를 원해요."
"어른이 됐어도 넌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 오늘처럼 특별한 날 , 너와 여자의 지혜를 나누고 싶구나. 산사, 사랑은 독이란다. 아주 달콤한 독이지. 그래서 널 행복하게 해 주는 동시에 너를 죽일 수도 있어."
존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여자가 적인 건 알지만, 악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건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거 아니냐."
"하지만 그때는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어요. 만약 우릴 발견하고 호른을 분다면..."
"와이들링이 우리를 잡으면 죽일거다. 우리에게 악한 마음이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그랬을 거야."
"그래도 호른은 이제 스톤스네이이크에게 있고, 이그리트의 무기도 저한테 있어요."
"우리를 위협할 상황이 못 되었단 말이군."
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존, 내가 만약 그 여자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에벤에게 맡기거나 내가 직접 했을거다."
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다면 왜 저한테 명령 하셨죠?"
"명령한 적은 없다. 그 상황에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결정해서 실행 하라고 했을 뿐이지. 그래서 널 남겨 둔 거고."
코린은 일어나 예리해진 롱소드를 도로 칼집에 넣었다.
"산을 올라가야 할 때면 나는 스톤스네이크를 찾는다. 화살을 쏴서 적을 잡아야 한다면 스콰이어 달브리지를 부르지. 에벤은 포로들한테 비밀을 캐내는 데 선수다. 존, 너도 사람들을 이끌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해. 여하튼 이번 기회로 난 너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 같구나."
"제가 만약 그 여자를 죽였다면요?"
"그래도 너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됐겠지. 자, 얘기를 너무 많이 했구나. 존, 너도 눈 좀 붙여라. 앞으로 한참을 행군해야지."
그는 조심스럽게 나무 주위를 돌다가 어떤 눈과 마주쳤다. 빨갛고 겁 먹은 눈... 하자만 그를 보자 그 눈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바로 동생의 눈이었다.
'얘가 원래 눈이 세 개였나?'
'원래는 아니었어. 형이 나이트워치 대원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야.'
고요한 외침이었다.
그는 컹컹 짖으며 냄새를 맡았다. 늑대와 나무와 소년의 냄새가 났다. 하지만 뒤에서 나는 냄새는 달랐다. 기름진 진흙과 단단한 회색 바위의 냄새, 그리고 한 가지 더... 그건 뭔가 두렵고 끔찍한 냄새였다.
'그래, 이건 죽음의 냄새야.'
그는 금새 알아 차렸다.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머리가 곤두서면서 입이 딱 벌어졌다.
'형, 두려워 하지마. 난 어둠속에서 나는 죽음의 냄새를 좋아해. 아무도 형을 볼 수 없지만 형은 그들을 볼수 있어. 하지만 먼저 눈을 떠야 해. 자, 이제 봐봐.'
나무가 몸을 굽혀 그를 쓰다듬었다.
"전쟁이 끝나면 저 여자를 풀어 줄 거라고 맹세할 수 있어?"
"토멘을 풀어 준다면 그렇게 하지."
티리온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다면 저 여자를 데리고 있어. 하지만 안전하게 데리고 있어야 해. 만일 저 얼빠진 놈들이 여자를 맘대로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글쎄, 사랑하는 누나, 거래가 공정하려면 저울이 필요하다는 걸 기억해 줬음 좋겠군."
티리온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침착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 내려는 노력이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저 여자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 토멘에게도 일어날 거라는 걸 명심해 줘. 거기에는 구타와 강간도 포함돼."
"이젠 내겐 롭 외에는 아들이 없어."
용케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 무서운 말을 해냈다. 그리고 적어도 그 사실은 기뻤다.
브리엔느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캐틀린을 쳐다 보았다.
"부인?"
"브랜과 릭콘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에이컨워터의 방앗간에서 붙잡혔대. 테온 그레이조이가 윈터펠 성벽에 그 애들 머리를 타르에 묻혀 걸어두고... 열 살부터 나와 함께 식사를 했던 테온이..."
'오, 난 드디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냈어.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전 모든 것을 기정 사실화 시켰습니다.'
자이메가 술에 취해 한 번 더 히죽 웃었다.
"스타크 부인, 세상일이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아뇨, 난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킹슬레이어."
"킹슬레이어... 난 당신을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리틀핑거가 당신을 먼저 가졌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난 결코 다른 사람이 먼저 먹은 음식은 먹지 않아요. 게다가 당신은 내 여동생의 반도 매력적이지 않죠."
그리고 갑자기 정색을 했다.
"난 세르세이말고 다른 여자하고는 한 번도 관계를 맺지 않았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난 당신의 남편보다 더 성실하지 않습니까? 가엾게도 이제는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버린 에다드 경 말입니다. 난 적오도 서자는 없지요. 참, 한 가지 물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 서자의 이름이 뭐였죠?"
캐틀린은 뒤로 한 걸음 물러갔다.
"브리엔느!"
"아니오, 그 이름이 아니었어요."
자이메가 포도주 병을 거꾸로 들었다. 피처럼 빨간 물방울이 그의 얼굴 위로 한 방울 떨어졌다.
"스노우였죠. 정말 하얀 이름이에요. 우리가 킹스가드의 맹세를 하고 받은 망토만큼이나."
브리엔느가 문을 밀치고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부인, 부르셨어요?"
"네 소드를 줘."
캐틀린은 손을 뻗었다.
'에다드 스타크의 나무로군. 스타크의 숲, 스타크의 성, 스타크의 신들이야. 이곳은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터전이야. 난 파이크의 그레이조이잖아. 크라겐의 문장이 그려진 방패를 갖고 광대한 솔트시를 항해하는 바다의 아들. 난 아샤와 함께 갔어야 했어.'
성문 꼭대기에 머리 두개가 강철 대못에 달려 있었다.
테온은 바람이 유령의 손처럼 망토를 잡아 당기는 동안 조용히 그 머리들을 응시 했다. 방앗간집 아들들은 브랜과 릭콘 또래였다. 체구와 혈색도 두 아이와 비슷해서 리크가 얼굴 가죽을 벗겨내고 타르를 끼얹자 감쪽 같았다. 보기 흉하게 썩은 살 덩어리는 낯익은 얼굴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그 처럼 바보들이었다.
'만약에 이걸 수양의 머리라고 했으면 뿔을 찾으려 들었을 거야. 바보같이.'
모닥불은 그때까지도 불씨가 남아 있었지만 온기는 거의 없었다.
"불이 곧 꺼지겠구나. 하지만 존, 월이 무너지면 세븐킹덤의 모든 불이 꺼져 버리는 거다."
존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직은 그들을 구해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러지 못할 수도 있어."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존은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반쯤은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쉽진 않을 거다. 존."
"네? 무슨 뜻이죠?"
"만약에 와이들링에게 붙잡히면 넌 반드시 항복해야 한다."
"네? 항복이요?"
믿을 수가 없었따. 와이들링들은 나이트워치 대원을 절대 포로로 삼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모조리 죽였다. 예외가 있다면...
"그들은 만스 레이더처럼 맹세를 깨뜨린 사람만 살려 두잖아요?"
"너도 그렇게 해라."
존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전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래야만 해. 이건 명령이다."
"명령이라구요? 하지만..."
혼란스러웠다. 지금 배신을 명령하는 거란 말인가.
"세븐킹덤을 안전하게 지킬 수만 있다면 명예로운 죽음보다 구차한 삶이 더 나을 수 있다. 너는 분명 나이트워치 형제겠지?"
"네. 하지만..."
"하지만은 없다. 존. 그런 게 아니라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존은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았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 말을 잘 들어라. 만에 하나 우리가 붙잡히면 넌 항복해라. 네가 풀어 줬던 와이들링 여자가 널 도와 줄거야. 어쩌면 그들이 너에게 검은 망토를 갈기갈기 찢으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그대로 따르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그들을 따르겠다고 맹세해라. 그리고 형제들과 로드커맨더를 비난해라. 무얼 시키더라도 모두 해야 한다. 피해서는 안돼. 저들이 널 믿을 수 있도록 말이야. 하지만 언제나 네가 누구인지 명심해야 한다. 그들과 밥을 먹고, 함께 말을 타고, 함께 싸우더라도,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넌 너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면밀히 관찰해라."
이곳은 스타크 가문의 사람들이 몸에서 온기를 잃으면 오는 곳이었다. 산 자들은 죽은 자의 영령이 떠도는 어두운 홀로 들어 오기를 꺼렸고, 그래서 그들은 납골당으로 숨어 들어왔다. 에다드의 텅 빈 무덤에 여섯 명의 도망자들의 식량을 은닉해 놓았다.
"어머, 이제 식량도 얼마 남지 않았네!"
오샤가 저장고를 보고 놀라며 중얼 거렸다.
"어쩔 수 없군요. 음식을 훔쳐 오지 않으면 호도르를 먹어야 할 판이니... 좋아요. 제가 성으로 올라가 보죠."
'호도르."
호도르가 오샤를 보며 씩 웃었다.
"한데 왕자님, 밖은 지금 낮인가요? 밤인가요? 전 날짜를 세는 것도 잊어 버렸어요."
'낮이야. 하지만 연기 때문에 온통 어두워."
"확실해?"
절름발이라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지만 브랜은 앉아서도 밖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두 곳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한 눈으로는 횃불을 든 오샤와 미라, 조젠, 호도르, 릭콘, 그리고 어둠 속으로 늘어선 죽은 사람들의 긴 열, 두 줄로 서 있는 키 큰 기둥을 보았도, 또 한 눈으로는 온통 연기로 휩싸인 어두운 성과 무너진 성문, 사슬이 엉키고 받침까지 없어진 도개교, 해자에 둥둥 떠 있는 까마귀들의 섬이 되어 버린 시체들을 보았다.
"우리가 당신 아버지에게 가야 할까요? 그레이워터워치 말이에요."
도개교를 건너면서 브랜이 물었다. 미라가 대답대신 동생을 바라 보았다. 그러자 조젠이 짧게 대답했다.
"우리의 길은 북쪽이에요."
숲 근처에서 브랜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성을 돌아 보았다. 흐린 하늘로 여전히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지만, 주방 굴뚝에서 나는 것은 아닐 터였다. 수백 년 동안 언제나 그러했듯이 성벽 너머로 탑 꼭대기들이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윈터펠이 약탈 당하고 무너진 성이라고 믿기 어려울 것 같았다.
"돌은 강해. 숲의 뿌리는 깊어. 그리고 저 땅 밑에는 조상들이 저마다 석좌를 지키고 앉아 있어."
브랜은 혼자말로 중얼 거렸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윈터펠도 존재 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윈터펠은 죽은 것이 아니야. 단지 나처럼 다쳤을 뿐이야. 나 역시 죽지 않았어."
4권에서는 싸우는 장면의 표현이 좀더 세밀해 졌으며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 까마귀가 물어 다 준 편지글로 결과만 알려 주었던 모습들이다.
티리온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지만 자신은 누나의 견제로 온 몸에 상처를 입는다.
티리온의 모습이 아슬아슬하게 전면으로 등장한다.
비중이 없는 인물인 것처럼 그려지는 것 같은데... 점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자신의 가문에서조차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의 아버지인 티윈은 핸드로 다시 전면에 나선다.
처음에 죽은 줄 알았던 브랜과 닉콘은 살아서 따로 길을 떠난다.
브랜은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닉콘의 존재감이...
존은 와이들링에게 항복?을 선언하면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월에서 존재감이 있는 인물은 아직까지는 존 밖에 없는데...
월에서 존의 모습이 기대된다.
가문...
가문에 따라 나오는 사람 이름들...
영주가 죽으면 금새 내 편, 네 편으로 수시로 바뀌는 상황...
어지럽다.
왕들의 전쟁인데...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아직 왕들이 남았는데..., 아직 통일이 안 되었는데...
북부의 왕 롭, 드래곤의 왕 대너리스등...
최후의 승자는 누구?
이렇게 결론 없이 2부 왕들의 전쟁은 끝나 버렸네.
이 소설의 특징은 미래를 암시하는 글이 자주 등장한다.
이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여 잘못 이해하게 되면 나중에 엉뚱한 곳으로 빠져 버리게 된다.
ㅎㅎㅎ.
글을 읽으면서 앞을 그려보는데... 엉망이 된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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