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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책 읽기

치우천왕기 6 <자오지 한웅> / 이우혁 _ 문학동네, 2011년 5월 7일 출간

대출일 : 2014년 08년 22일  ▷ 반납일 : 2014년 09년 05일.




책속으로...

치우천은 빙그레 웃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물건 따위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나족이 구리 무기를 많이 얻었다 해도 만드는 법을 모른다면 헛것입니다."
"하... 하지만..."
치우천은 웃으며 지에게 말했다.
"당신의 좋은 기분을 깨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물건이 싸움을 이롭게 해 줄지언정, 물건이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고달파질 수는 있어도, 으음... 당신들은 많아야 세 번이면 도로 돌을 주워 들어야 할 것입니다. 머리 좋으신 지님께서 그런 물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제가 당황스럽군요."
갑자기 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어깨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치우천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그 말대로 치우천은 세 번 싸우는 동안 지나족의 구리 무기를 없애 버릴 묘책을 짜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치우천은 복수라도 하듯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을 지에게 쏘아 붙였다.
"도리어 이렇게 되니 당신에게 고맙군요. 덕분에 고시울률과 솟대 단군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꾀를 내 주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발목이 잡혀 마음대로 헌원을 쳐 부수기 어려웠을텐데, 당신이 주신안의 적을 깨끗이 정리해 준 덕분에 머지않아 헌원은 제게 쓴 맛을 보겠지요. 당신이 잡힌 이상, 더 이상 주신의 누구도 헌원에게 속지 않고 무기를 들 것 입니다. 그뿐입니까?  헌원이 끝까지 속을 숨겨다면 제가 조급해졌을 것인데, 구리 무기를 얻었다고 속을 드러내며 움직인다면 그거야말로 제가 바라던 일 입니다. 하하! 주신 전체가 앞으로는 헌원에게 이를 갈고 모든 힘을 다해 맞설 것이고, 헌원은 참고 기다려 왔던 자신의 장점을 버렸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 입니까?  선인도 신수도 저도 할 수 없던 일을 벌여 주신을  하나로 뭉치게 해 주고 무겁기 짝이 없는 헌원을 들 뜨게 만들어 주었으니, 저는 지님, 당신에게 감사 드립니다. 지님은 저에게 누구보다도 큰 공을 세워 주셨으며 주신의 은인이라 할 만 합니다. 하하. 참으로 길고 길었던 싸움이지만 당신과의 싸움은 결국 제가 이겼습니다. 더구나 생각지 않았던 신세까지 졌고요. 똑똑하신 지님이라면 알 수 있을 텐데요? 하하하! 이제 헌원을 무릎 꿇릴 차례겠지요."


누조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내 재주가 비록 크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나를 선인이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나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이었고, 그 때문에 누에를 쳐서 빈단을 만들게 되었네. 물론 내게 신통력이 있거나 주술의 힘이 있는 것은 아니네. 그런 가르침은 타타츄이트에 의해 이어졌고 나는 그런 힘은 없어. 한 마리 한 마리 벌레를 부리는 기술은 타타츄이트 선인에서 이어져서 지금은 미아우족의 것이 되었다 알고 있네. 하지만 그런 신통력으로는 비황과 같은, 숫자를 셀 수도 없는 벌레를 다스릴 수 없어. 그러나 내가 이은 벌레들에 대한 지식은 숫자를 가리지 않으며, 숫자가 많을수록 지식에 의하여 다스리기 좋다네. 물론 메뚜기 떼를 마음대로 부리거나 순식간에 없앨 수는 없지만 그들을 몰고 가서 힘을 빼고, 마침내는 죽여 없앨 방법은 있네."
치우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이 아닌 지혜로 하신다는 말씀이군요."


치우천은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의 눈에는 확고한 신념이 번득였다. 치우천은 긴장을 풀며 바닥에 아무렇게 편하게 몸을 눕히며 기지개를 폈다.
"아, 당신을 만나게 되어 너무도 좋소.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도 비할데가 없고..."
'무엇이 그리 좋으셔요;:
"그냥, 그냥 말이요. 전쟁이 있고 누구는 죽어 나가고 고통을 받지만...., 당신과 나도 언젠가 헤어진다고 말했었지?"
"그랬지요."
"그래. 몹시 아프겠지.  아주 괴로울 거야. 허나 후회할 것 같지 않소. 단 한 순간도, 내 살아 온 길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순간마저도 말이오. 그런 아픔마저도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같소. 세상은 좋은 곳이고 산다는 건 아주 좋으니까..."
치우천은 나른하게 말하다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주 편안한 표정이었기에 치우천이 혼자 잠드는데도 맥달은 그를 바라보며 계속 흐뭇한 미소만 보낼 뿐이었다.


천부인이 말했다.
응룡은 앞으로 청룡으로 불리울 것이며, 동쪽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응룡은 이전에 지녔던 거만함을 금빛과 함께 씻어 버린 듯,  현명하고 온화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천부인은 계속 말했다.
번개범은 앞으로 백호라 불리울 것이며,  서쪽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번개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긴 이빨이 스르르 사라지고 상서러운 오색구름이 주변에서 솟아났다.
붕은 앞으로 주작이라 불리울 것이며, 서쪽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붕도 치기 어린 눈빛을 거두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려한 깃털로 온 몸을 감쌌다.
첸누는 앞으로 현무로 불리울 것이며, 북쪽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첸누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그의 몸에도 검은 색의 안개가 일어났다.
다음 순간, 하늘에서 금빛의 광채가 비춰지더니 사신수가 된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천부인이 말했다.
앞으로 인간 세상에서 신수가 날 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있더라도 저들이 막을 것이다.

20140827.



치우천왕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