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일 : 2014년 09년 02일 ▷ 반납일 : 2014년 09년 16일.
먼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지도와 돈과 신발을 빌려 준 이들에게,
그리고 나의 여행에 대해 "그만 말하고 이제 글로 쓰라"고 충고해 준 아내에게...
책속으로...
"아아, 맞아요. 사실은 깜빡 잊고 말았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런 친구를 믿고 버스표 예약을 맡긴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내가 화를 내며 앞으로 걸어가자 차루는 뒤 따라오며 여행은 잘 다녀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연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그렇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차루가 내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왜 화를 내시는 거죠? 잘 다녀 왔으면 그걸로 노 프라블럼 아닌가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 그런 것 때문에 화를 낸다면 어리석은 일 아닌가요?"
이제는 그 놈의 '노 프라블럼' 소리도 지겨웠다. 나는 냉정하게 차루를 밀쳐냈다. 그 순간 차루가 또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업이에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정해져 있는 일인 걸 내가 어쩌란 말인가요. 어쨌든 현실의 결과를 받아 들여야지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차루는 한낱 릭샤 운전사가 아니었다. 인생의 문제를 초월한 성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인도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에서 어느덧 깨달음을 얻은 힌두 명상가로 변신해 있었다.
희랍의 철학자 제논이 상인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의 집에는 특별한 노예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제논이 화가 나서 노예의 뺨을 때리자 노예는 평온한 목소리로 제논에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 순간에 주인님에게 뺨을 맞도록 되어 있었고, 주인님은 또 제 뺨을 때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했을 뿐 입니다."
제논은 훗날 스토아 학파의 대철학자가 되었는데, 인도인으로 짐작되는 이 노예에게 영향을 받은 듯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흔들림 없는 현실 수용'이 그이 주된 사상이었다.
한편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
세네카든, 제논의 노예든, 또는 차루든, 이들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삶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 들여라. 그러면 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마드라스를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차루를 만났다. 작별 인사도 할 겸, 그 동안 타고 다닌 릭쌰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차루는 또 손을 흔들면서 허풍을 떨었다.
"돈은 주고 싶은 대로 주세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내가 일부러 정색을 하면서, 그럼 1루피(30원)만 줘도 되겠느냐고 묻자 차루는 외쳤다.
"노 프라블럼!"
그러면서 차루는 당당하게 덧 붙였다. 1루피만 줘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자기의 친구이니까, 자기한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만의 행복이 아니라 돈을 준 내 자신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달라고 했다.
영리한 차루, 얄미운 차루, 못난 차루... 마드라스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차루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생을 살면서도 "노 프라블럼!"을 외치며, 푸웅푸웅 고무나팔을 울리며 세상 속으로 달려가는 차루!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집착과 소요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내게 그는 잊지 못할 훌륭한 스승이었다.
- 빈자의 행복 中...
나는 부서지기 직전인 나무침대에 누워 천장에 뚫린 큼지막한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 구명으로 별들이 유성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우주 전체가 쿠리 마을과 바냔나무와 5루피(150원)를 떼어 먹은 노인의 집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진 게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들의 토담집 위로 별똥별이 하나 둘 빗금을 그으며 떨어져 내렸다.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역시 저 하늘 호수로부터 먼 여행을 떠나 온 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 때까지 별을 구경할 수 있는 구멍 뚫린 방이 나는 너무 좋았다.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中...
그리하여 북인도의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16루피(480원) 어치의 축복을 성자로부터 받았다. 성자는 노란 색과 붉은 색 물감을 꺼내 내 이마에 무늬를 그리고 만트라(신성한 주문)를 읊어대기도 하면서 "하리 옴! 옴 나마 시바야!"를 소리도 낭랑하게 외쳤다. 그는 이번 생에서 내가 틀림없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고 유창한 축복의 말들을 내 머리꼭지 위에다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의식이 끝나자 앞 자리에 앉은 이빨 붉은 남자를 선두로 버스에 탄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쳤다. 히말라야 산중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난데없이 울려 퍼진 그 박수 소리는 성당과 교회에서 행하는 어떤 영세식과 세례식 때 보다도 더 열렬한 축하였다.
성장의 축복을 받고 나니 내 자신이 신에게로 성큼 다가 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의 절망과 슬픔에 젖었던 한 여행자는 빈털터리 성자의 유머와 재치 덕분에 마음이 한결 밝고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밝고 여유로운 세계가 내게는 곧 신의 자리였다.
성자가 내려 준 그날의 축복은 까닭 없는 허무감에 흔들리던 한 젊은이의 영혼을 간단히 치유해 주었다. 데라둔까지 가는, 아니 신에게로 가는 버스 여행은 그렇게 두 시간이 걸렸다.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 480원 어치의 축복 中...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신작로 저편에서 누더기 담요를 두른 걸인 한 사람이 걸어왔다. 가까이 오는데 보니 거지가 아니라 장발을 '싯다 바바 하리 옴 니티야난다'가 아닌가! 물항아리를 깬 것으로 나를 잡으러 오는 게 틀림 없었다. 나는 겁이 났지만 달리 숨을 수도 없었다. 요기는 내가 버스에 타고 있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열린 차창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에게 세 가지 만트라를 전수시켜주기 위해서 왔다. 이 세가지 만트라를 기억한다면 그대는 다른 누구도 스승으로 섬길 필요가 없다. 그대의 가장 완벽한 스승은 그대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기는 차창 너머로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세 개의 만트라를 전했다.
"첫 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 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 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에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말을 마치고 요기는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옴--"하고 진동을 보냈다. 그 순간 척추 끝에서 온 몸을 마비시킬 것만 같은 강한 진동이 일면서 몸 전체로 퍼졌다. 축복과 환희의 물결이 내 안에 밀려왔다.
- 세 가지 만트라 中...
나는 천천히 밀가루 떡을 뜯으며 다시 물었다.
"제게 무얼 일깨워주시려는 건가요? 지금 말씀해 주시면 안되나요?
구루는 대답대신 한참 동안 나를 응시했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넌 이미 그대에게 일깨워 주었어. 그대가 못 알아 들었을 뿐이지. 다시 한 번 날 잘 보게. 내 몸에 무엇이 잠겨져 있나? 밧줄이 나를 묶고 있지. 내가 말해 줄 건 그것뿐이야. 그리고 이 밧줄은 내 스스로 감은 거이야.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구루는 말을 마치고 벌떡 일어나 몸에 걸치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그러더니 말릴 사이도 없이 그것을 갠지스 강에 힘껏 집어 던졌다. 밧줄은 잔잔한 물결에 실려 어둠 속으로 흘러갔다. 구루가 말했다.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유를 찾는 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난 이 사실을 20년 동안 그대의 귀에 대고 속삭여 왔네. 바로 곁에서 말야."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中...
그렇게 해서 버스 지붕은 머리를 깍는 것이 과연 인체에 해로운가 아닌가에 대한 의학적이고 신학적인 토론으로 어지러웠다. 아유르 베다(인도의 자연의학)와 크리쉬나 신이 등장하고, 전설과 신화가 인용되는가 하면, 염소는 난데없이 음메 울고 닭들은 꾸벅꾸벅 졸았다.
순진한 인도 사람들!
푸른 색 버스는 그렇게 북인도의 따사로운 햇살 속을 염소와 닭과 손님들을 가득 싵고 털털 거리며 달려갔다. 멀리 보이는 눈 덮인 히말라야, 내 피부에 와 닿는 햇빛, 그리고 버스 지붕 위에 탄 동화나라의 사람들, 그것만으로도 나는 부족함이 없이 행복했다.
그 무렵 나는 누군가가 필요했었다. 별일 없이 잘 돌아 나니고 있는 것 같기에 아무도 내 마음의 구석진 다락방을 들여다 보진 않았지만, 그 다락방 속에서 나는 무척이나 외롭고 사람이 그리웠었다. 그날 버스 지붕 위에서 만난 인도인들, 그들이 그 그리움을 구석구석 채워 주었다.
- 누구나 둥근 하늘 밑에서 산다 中...
"이 버스, 왜 안 떠나는 거요?
그러자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아무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힌두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화가 나서 소리쳤다.
"버스가 한 시간이 넘도록서 있는데 당신들은 바보처럼 기다리기만 할 겁니까? 이유가 뭔지 알아 봐야죠."
그러자 그때까지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던 그 힌두교인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운전사가 없으니까요."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운전사는 그곳에 도착한 순간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대답은 그런 멍청한 게 아니었다. 나는 마치 그 인두인 때문에 버스가 움직이지 않기라도 하는 것 처럼 따져 물었다.
"그렇다면 운전사가 어디로 갔는지 밝혀 내야 할 게 아닙니까? 갑자기 배탈이 나서 쓰러 졌는지, 아니면 옛날 동창생이라도 만난 겁니까?"
그때 더욱 화를 돋우는 대답이 버스 앞쪽에서 들려왔다.
"맞아요. 운전사가 친구를 만났어요. 둘이서 저쪽 찻집으로 갔어요."
나는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ㆍㆍㆍㆍㆍ
그때 그 힌두교인 남자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중 입니까?"
나는 화가 나서, 라니켓으로 간다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또 묻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갈 예정 입니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 엉뚱한 인도인의 호기심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퉁명스럽게 내 뱉았다.
"그 다음엔 다시 남쪽으로 내려 올 거예요. 그래서 뉴델리에 들렀다가 며칠 뒤 우리 나라로 돌아 갈 겁니다. 이제 됐습니까?"
"그럼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갑니까?"
"그거야 아직 모르죠. 또 인도에 올지도 모르고, 네팔로 갈 수도 있고. 하지만 오늘 라니켓에 도착하는 것 조차 불확실한 마당에 나중의 일을 어떻게 안단 말이오?"
그러자 그 힌두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린 우리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잘 알지 못 합니다. 그러니 서둘러 어딘가로 가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말문이 막혔다. 곁에 서서 한 시간이 넘도록 내 영혼을 꿰뚫어 본 이 남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버스는 떠날 시간이 되면 정확히 떠날 겁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한다 해도 신이 정해 놓은 순서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조용히 덧 붙였다.
"여기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든지,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갖든지 둘 중 하나 입니다. 당신이 어느 쪽을 선책하더라도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왜 어리석게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쪽을 택하겠습니까?"
ㆍㆍㆍㆍㆍ
마침내 나타날 시간이 되자 운전사는 미안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타났고, 떠날 시간이 되자 버스는 떠났다. 그리고 나는 수천년 전부터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라니켓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삶이 정확한 질서에 따라 진해되고 있는데, 내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한 두 시간 늦었다고 해서 불평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일을 받아 들이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영혼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싣고 버스는 7천8백 미터의 난다 데비 히말라야의 품안으로 성큼 달려 들어갔다.
- 영혼의 푸른 버스 中...
나는 또 다시 쓸모없는 피리를 사고 싶지 않아서 노인에게 10루피(300원) 정도 적선하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10루피짜리를 꺼낸다는 것이 그만 덜렁 1백 루피짜리 종이돈이 나오고 말았다. 내가 아차 하는 사이에 1백 루피는 노인의 재빠른 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인은 종이돈을 꽉 움켜 쥔 손을 합장을 하고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아, 이런 고마우실 데가! 신께서 틀림없이 당신을 기억하실 겁니다. 나 또한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연신 합장한 손을 이마 위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이미 때는 늦어서 돌려 달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맥없이 1백 루피를 빼앗긴 터라 속이 쓰렀지만 내색할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자비스런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더 손해를 보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었다.
ㆍㆍㆍㆍㆍ
그것은 창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눈을 부비며 창문을 열자 베란다 밑에 어제의 그 노인이 피리를 불며 서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얼른 또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가락이 긴, 아침에 듣는 인도 전통의 라가 곡이었다. 나는 순간 기가 막혀서 창문을 도로 닫았다. 어제 1백 루피를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서 흥정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금방 쪼개져버릴 피리를 떠 넘기고 또 다시 거금을 우려 낼 계획이었다. 나는 고약한 노인네 때문에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창문을 닫은 뒤에도 피리소리는 멎지 않았따. 하는 수작은 미워도 피리 부는 솜씨는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타일러서 보낼 생각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노인은 합장을 하며 내게 아침 인사를 했다.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보시오. 어제 그 만큼 돈을 줬으면 됐지 왜 또 와서 이러는 거요? 난 분명히 말하지만 피리를 살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어서 가시오."
그러자 노인 말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녜요? 어서 가세요. 더 이상 내게서 뭘 뜯어낼 생각이랑 하지 말아요."
노인이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난 당신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당신의 방 앞에 와서 피리를 불어 주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난 그것 말고는 당신한테 해 줄 것이 없거든요."
노인의 진진한 표정을 보고서 순간 내가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노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돈을 더 우려내려고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내가 준 돈에 고마움을 느껴 뭔가 보답을 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노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것이 곧 밝혀졌다. 그는 내가 그 갠지스 강가에 머무는 닷새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내 방 앞에 와서 필릴리 필릴리 피리를 불었다. 피리소리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면 미명을 헤치고 갠지스 강 위로 오렌지색 태양이 떠 오르고 있었다. 노인이 불어주는 피리곡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롭고, 뭔가 다른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다.
마음이 내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1백 루피, 약 3천원 정도를 적선한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노인은 내게 작은 베풂에도 보답하는 자세를 가르쳤고, 가난하지만 아직은 부유함을 잃지 않은 마음을 전해 주었다.
- 피리부는 노인 中...
어느날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형이 죽었는데 이 명상센터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가? 다들 앞으로의 일을 염려하고 있고,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그러자 스와미 아난다는 대답했다.
"내가 왜 걱정을 해야 하는가? 이 명상센터는 내 소유가 아니다. 그런데 왜 내가. 내 소유가 아닌 것을 놓고 미래를 염려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스승은 우리에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살라고 가르쳤지 않은가?"
그의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이 세상에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란 없음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명상센터에 오지 않았던가. 미래에 살기보다는 '지금 여기'에 살기 위해 온갖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았던가. 다들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겼던 스와미 아난다는 어느새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스와미 아난다의 그말은 나한테도 큰 지침이 되었다. 상황의 변화가 생기고 내 곁에 머물렀던 것이 떠나갈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으려고 할 때마다, 나는 스승의 어떤 가르침보다도 스와미 아난다의 그 말을 깨우침의 거울로 삼았다.
"그것은 내 소유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내거 왜 걱정해야 하는가? 스승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라고 가르쳤지 않은가?"
- 바보와 현자 中...
타지마할은 파리의 에펠탑처럼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그 아름다움과 신비는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인도를 점령한 모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그이 아내 뭄 타즈는 열네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마지막 열다섯번째 아이를 낳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샤 자한은 죽은 아내를 추억하기 위해 타지마할이라는 이 역사적인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이기 이전에 타지마할은 예술의 완성품이다. 그것을 짓기위해 인도 전역과 중앙 아시아로부터 2만 명의 인부가 동원 되었고, 프랑스 보르도의 건축가 오스틴과 이탈리아 베니스의 건축가 베로네오가 건물의 장식을 담당했다. 주요 건축은 이란의 시라즈 출신의 이사 칸이 맡았다. 건축은 1631년에 시작되어 1653년에 완성 되었다.
어쨌든 타지마할을 구경하게 돼서 나는 행복했다. 마침 보름달이 다가 왔으므로, 밤에 다시 와서 구경하기로 했다. 흰 대리석의 타지마할은 보름달 아래서 볼 때 그 미학이 완성된다고 하지 않는가. 밤에 보면 허공에 떠 있는 신비의 궁정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ㆍㆍㆍㆍㆍ
아루나찰라 산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라마나 마하리쉬는 <마하리쉬와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은 자만심에 차 있는 사람과 가장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신을 필요로 하지만, 자만심에 찬 사람은 신 없이도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오렌지 세 알 中...
다음 날 아침, 나는 미스터 씽의 가족과 함께 럭나우 박물관을 구경했다. 우리는 박물관 앞 뜰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나 때문에 미안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그는 자기 집에 귀한 손님이 왔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미스터 씽은 덧 붙였다.
"신은 나에게 우정과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신께서도 우리의 만남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러면서 미스터 씽은 덧 붙였다.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난 다만 신의 존재를 믿기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 입니다. 신은 나의 목표가 아니라 나의 기준입니다."
- 미스터 씽 中....
그렇게 일주일으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저녁 그 이상한 여인숙 주인에게서 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오늘은 뭘 배웠소?"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세뇌가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 쯤 지났을 때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그것은 바라나시를 떠나 인도의 다른 도시들로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딜 가든지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그것을 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숙 주인은 좋은 스승이었다.
- 오늘은 뭘 배웠지? 中...
그렇게 모두들 한 마디씩 했다. 형제 승려들의 말을 경청한 노승은 마침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 말처럼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고 수행하면 많은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 입문할 때 어려운 중생을 돕고 구제하는 데 평생을 바치겠다고 맹세에 맹세를 거듭 했거늘, 이제 나이 먹어 아무 쓸모 없게 된 이 늙은이 눈 앞에서 힘 없는 생명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걸 모른 척하란 말인가? 눈을 감고 마음을 닫은 채, 중생을 도우라는 관세음보살의 가르침만 외우고 있으라 말인가?"
노승의 간단하고 분명한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승려들 중 누구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 우리 집에 갑시다 中...
밀려오는 소떼들 틈을 비집고 샤부는 요령있게 릭샤를 몰면서 말했다.
"산스크리트 어(고대 인도어)에선 인간을 '둘라밤'이라고 하죠. 둘라밤은 얻기 힘든 기회라는 뜻 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매우 드문 기회이니까요. 생물체가 인간으로 환생하려면 8천4백만 번의 윤회를 거듭해야 하죠."
여든 네 번도 아니고 8천4백만 번의 윤회라! 그 말을 들으니 유명한 인도 설화가 생각났다.한 사람이 신전에 바치기 위해 염소를 끌고 갔다. 제사장이 염소의 목을 치려고 칼을 높이 쳐든 순간 염소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제사장이 염소에게 웃는 이유를 묻자 염소는 말했다.
"이제 난 서른 세 번만 더 죽으면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오."
과연 인도의 염소다운 대답이 아닌가.
- 전생에 나는 인도에서 中...
"나마스카, 오늘은 또 어딜 갈 겁니까?"
나는 입술을 가르켜 보이며 말했다.
"너무 돌아 다녀서 입술이 다 부르텄어요. 이젠 볼 만큼 봤고 하니까 오늘은 그냥 인도문 앞에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 할래요."
그러자 가게 주인이 말했다.
"이제야 정말로 여행하는 법을 터득했군요. 좋습니다. 나도 함께 갑시다."
그렇게 해서 그날 나는 그 가게 주인과 함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인도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인도문 앞 해변가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행인들을 구경했다. 피리를 불어대는 코브라 아저씨도 보았고, 시골에서 올라 온 촌스런 인도인들도 보았다. 그리고 성지 참배 왔다면서 허리에 돈가방 차고 인도문 앞을 기웃거리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만났다.
ㆍㆍㆍㆍㆍ
이튿날 나는 뭄바이를 떠났다. 배낭을 지고 길을 나서는 내게 가게 주인이 물었다.
"나마스카 , 오늘은 어디로 갈 겁니끼?"
나는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야죠. 꼭 뭘 구경하러 온 건 아니니까요."
가게 주인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디로 가든지 너무 자신을 이리 저리 끌고 다니지 마시오. 한 장소에 앉아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좋은 여행이 되길 빌겠소. 그럼 잘 가시오. 나마스카!"
나마스카는 인도인들의 인사말로 '당신 속의 신에게 절을 한다'는 뜻이다.
- 나마스카 中...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나라를 떠나는 자는 철학자이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무목의 충돌에 의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장에 불과하다고 고울드는 말했다. 나는 그런 방랑자가 되고자 노력했다. 인더스 강가에서 탁발승들이 오네시크리토스에게 반문했듯이, '타인이 누구인가를 묻기전에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반문해 보는 자오가 나에게는 다름아닌 인도였다. 모든 가주말 나무 아래가 곧 인도였다. 삐걱대며 지나가는 수레 라따가 인도였다.
그곳에서 나는 때로 당혹스러웠고, 어지러웠으며,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무서워 도앙치기도 했다. 허무하거나, 존재 밑바닥까지 행복하기도 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서 나 자신과 마주 서 본 적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인도였다.
어떤 이들은 인도는 자기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단언한다. 그러니 우리는 굳이 어디로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이상학적 관념의 비약을 꾀하기 전에, 허름한 여인숙의 창문을 열어 젖히고 아침의 인도와 마주하는 것이 나는 좋았다. 아열대의 공기, 이상한 새들, 꽃과 차의 향기, 신전의 인상적인 지붕들, 사리를 휘감고 광활한 들판 너머로 신기루처럼 사라져가던 여인들, 그러한 것이 나는 좋았다.
내 인생이 황금기는 여행에 있었으며, 특히 인도 여행은 그 황금기의 열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삶을 배웠고, 세상을 알았다. 밤을 지나 보내고, 여인숙 문을 나서면 어디나 인도였다. 벌써부터 경적을 울려대는 릭샤와 소떼와 해변으로 똥 누러 가는 인도인들에게 나는 큰 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곤 했다.
"굿모닝 인디아!"
- 굿모닝 인디아 中...
인도의 영적 스승 사티야 사이 바바는 말했다.
"사람들은 곧잘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를 초월하는 자세가 더 큰 힘이다."
"노 프라블럼!"
☞ 릭쌰 _Rickshaw : 바퀴 셋 달린 자동차(오토릭쌰, 택시), 바퀴 셋 달린 자전거(인력거)
☞ 만트라 _Mantra : 기도 또는 명상중에 반복되어 지는 기도, 주문.
☞ 크리쉬 _Krrish : 인도의 슈퍼 히어로.
☞구루 _Guru : 정신적인 지도자. (북부 인도의 시크교의 지도자)
☞ 라가 _Raga :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의 고전 음악에서 사용하는 즉흥연주 및 작곡법의 선율구조.
토요일.
아침에 회사에서 퇴근하고 여유있게 쉬면서 책을 다 읽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강릉을 향해 출발을 하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회사를 나가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밤에 근무를 하고도 장거리를 운전을 해도 거뜬하게 버티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도 무리를 하면 할 수는 있다는 정신력은 있는데 체력에 자신이 없다.
ㅎㅎㅎ
원래는 '하버드의 생각수업'을 빌려 올려고 했는데 대출중이라서 예약을 하고는 이 책을 빌려왔다.
가을이라는 달을 맞아 소설책이 아닌 조금은 자신을 마주 볼 수 있는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골랐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면서도 여행을 떠나기도 좋은 계절이다.
혼자서든 둘이서든...
작가의 인도 여행기.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 여러 분류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적어 놓은 책이다.
무지 넓은 땅 덩어리의 인도.
무지 넓은 땅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인도인.
많은 사람들 만큼이나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도인.
이들을 만나는 작가의 모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편안하게 움직이는 여행, 잘 짜여진 여행이 아니라...
일부러 고생을 하면서도 많은 시간을, 많은 사람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행을 선택한 작가의 여행이다.
외국어를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능력?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능력?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 이 있다면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
ㅎㅎㅎㅎㅎ!
뜻대로 하고 싶다고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는 함정이 있지만...
...
지나고 보면 아름다웠다 싶은 것 두 가지.
지나고 보면
아름다웠다 싶은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청춘이다.
이 둘은 진행 중일 때는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천천히 미소로 바뀌면서 재미있는 추억이 된다.
고생이 심할 수록 이야깃거리는 많아지게 마련이다.
- 홍영철의 《 너는 가슴을 따라 살고 있는가 》중에서.
먼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지도와 돈과 신발을 빌려 준 이들에게,
그리고 나의 여행에 대해 "그만 말하고 이제 글로 쓰라"고 충고해 준 아내에게...
책속으로...
"아아, 맞아요. 사실은 깜빡 잊고 말았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런 친구를 믿고 버스표 예약을 맡긴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내가 화를 내며 앞으로 걸어가자 차루는 뒤 따라오며 여행은 잘 다녀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연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그렇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차루가 내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왜 화를 내시는 거죠? 잘 다녀 왔으면 그걸로 노 프라블럼 아닌가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 그런 것 때문에 화를 낸다면 어리석은 일 아닌가요?"
이제는 그 놈의 '노 프라블럼' 소리도 지겨웠다. 나는 냉정하게 차루를 밀쳐냈다. 그 순간 차루가 또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업이에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정해져 있는 일인 걸 내가 어쩌란 말인가요. 어쨌든 현실의 결과를 받아 들여야지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차루는 한낱 릭샤 운전사가 아니었다. 인생의 문제를 초월한 성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인도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에서 어느덧 깨달음을 얻은 힌두 명상가로 변신해 있었다.
희랍의 철학자 제논이 상인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의 집에는 특별한 노예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제논이 화가 나서 노예의 뺨을 때리자 노예는 평온한 목소리로 제논에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 순간에 주인님에게 뺨을 맞도록 되어 있었고, 주인님은 또 제 뺨을 때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했을 뿐 입니다."
제논은 훗날 스토아 학파의 대철학자가 되었는데, 인도인으로 짐작되는 이 노예에게 영향을 받은 듯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흔들림 없는 현실 수용'이 그이 주된 사상이었다.
한편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
세네카든, 제논의 노예든, 또는 차루든, 이들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삶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 들여라. 그러면 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마드라스를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차루를 만났다. 작별 인사도 할 겸, 그 동안 타고 다닌 릭쌰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차루는 또 손을 흔들면서 허풍을 떨었다.
"돈은 주고 싶은 대로 주세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내가 일부러 정색을 하면서, 그럼 1루피(30원)만 줘도 되겠느냐고 묻자 차루는 외쳤다.
"노 프라블럼!"
그러면서 차루는 당당하게 덧 붙였다. 1루피만 줘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자기의 친구이니까, 자기한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만의 행복이 아니라 돈을 준 내 자신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달라고 했다.
영리한 차루, 얄미운 차루, 못난 차루... 마드라스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차루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생을 살면서도 "노 프라블럼!"을 외치며, 푸웅푸웅 고무나팔을 울리며 세상 속으로 달려가는 차루!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집착과 소요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내게 그는 잊지 못할 훌륭한 스승이었다.
- 빈자의 행복 中...
나는 부서지기 직전인 나무침대에 누워 천장에 뚫린 큼지막한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 구명으로 별들이 유성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우주 전체가 쿠리 마을과 바냔나무와 5루피(150원)를 떼어 먹은 노인의 집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진 게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들의 토담집 위로 별똥별이 하나 둘 빗금을 그으며 떨어져 내렸다.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역시 저 하늘 호수로부터 먼 여행을 떠나 온 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 때까지 별을 구경할 수 있는 구멍 뚫린 방이 나는 너무 좋았다.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中...
그리하여 북인도의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16루피(480원) 어치의 축복을 성자로부터 받았다. 성자는 노란 색과 붉은 색 물감을 꺼내 내 이마에 무늬를 그리고 만트라(신성한 주문)를 읊어대기도 하면서 "하리 옴! 옴 나마 시바야!"를 소리도 낭랑하게 외쳤다. 그는 이번 생에서 내가 틀림없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고 유창한 축복의 말들을 내 머리꼭지 위에다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의식이 끝나자 앞 자리에 앉은 이빨 붉은 남자를 선두로 버스에 탄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쳤다. 히말라야 산중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난데없이 울려 퍼진 그 박수 소리는 성당과 교회에서 행하는 어떤 영세식과 세례식 때 보다도 더 열렬한 축하였다.
성장의 축복을 받고 나니 내 자신이 신에게로 성큼 다가 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의 절망과 슬픔에 젖었던 한 여행자는 빈털터리 성자의 유머와 재치 덕분에 마음이 한결 밝고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밝고 여유로운 세계가 내게는 곧 신의 자리였다.
성자가 내려 준 그날의 축복은 까닭 없는 허무감에 흔들리던 한 젊은이의 영혼을 간단히 치유해 주었다. 데라둔까지 가는, 아니 신에게로 가는 버스 여행은 그렇게 두 시간이 걸렸다.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 480원 어치의 축복 中...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신작로 저편에서 누더기 담요를 두른 걸인 한 사람이 걸어왔다. 가까이 오는데 보니 거지가 아니라 장발을 '싯다 바바 하리 옴 니티야난다'가 아닌가! 물항아리를 깬 것으로 나를 잡으러 오는 게 틀림 없었다. 나는 겁이 났지만 달리 숨을 수도 없었다. 요기는 내가 버스에 타고 있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열린 차창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에게 세 가지 만트라를 전수시켜주기 위해서 왔다. 이 세가지 만트라를 기억한다면 그대는 다른 누구도 스승으로 섬길 필요가 없다. 그대의 가장 완벽한 스승은 그대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기는 차창 너머로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세 개의 만트라를 전했다.
"첫 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 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 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에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말을 마치고 요기는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옴--"하고 진동을 보냈다. 그 순간 척추 끝에서 온 몸을 마비시킬 것만 같은 강한 진동이 일면서 몸 전체로 퍼졌다. 축복과 환희의 물결이 내 안에 밀려왔다.
- 세 가지 만트라 中...
나는 천천히 밀가루 떡을 뜯으며 다시 물었다.
"제게 무얼 일깨워주시려는 건가요? 지금 말씀해 주시면 안되나요?
구루는 대답대신 한참 동안 나를 응시했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넌 이미 그대에게 일깨워 주었어. 그대가 못 알아 들었을 뿐이지. 다시 한 번 날 잘 보게. 내 몸에 무엇이 잠겨져 있나? 밧줄이 나를 묶고 있지. 내가 말해 줄 건 그것뿐이야. 그리고 이 밧줄은 내 스스로 감은 거이야.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구루는 말을 마치고 벌떡 일어나 몸에 걸치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그러더니 말릴 사이도 없이 그것을 갠지스 강에 힘껏 집어 던졌다. 밧줄은 잔잔한 물결에 실려 어둠 속으로 흘러갔다. 구루가 말했다.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유를 찾는 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난 이 사실을 20년 동안 그대의 귀에 대고 속삭여 왔네. 바로 곁에서 말야."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中...
그렇게 해서 버스 지붕은 머리를 깍는 것이 과연 인체에 해로운가 아닌가에 대한 의학적이고 신학적인 토론으로 어지러웠다. 아유르 베다(인도의 자연의학)와 크리쉬나 신이 등장하고, 전설과 신화가 인용되는가 하면, 염소는 난데없이 음메 울고 닭들은 꾸벅꾸벅 졸았다.
순진한 인도 사람들!
푸른 색 버스는 그렇게 북인도의 따사로운 햇살 속을 염소와 닭과 손님들을 가득 싵고 털털 거리며 달려갔다. 멀리 보이는 눈 덮인 히말라야, 내 피부에 와 닿는 햇빛, 그리고 버스 지붕 위에 탄 동화나라의 사람들, 그것만으로도 나는 부족함이 없이 행복했다.
그 무렵 나는 누군가가 필요했었다. 별일 없이 잘 돌아 나니고 있는 것 같기에 아무도 내 마음의 구석진 다락방을 들여다 보진 않았지만, 그 다락방 속에서 나는 무척이나 외롭고 사람이 그리웠었다. 그날 버스 지붕 위에서 만난 인도인들, 그들이 그 그리움을 구석구석 채워 주었다.
- 누구나 둥근 하늘 밑에서 산다 中...
"이 버스, 왜 안 떠나는 거요?
그러자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아무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힌두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화가 나서 소리쳤다.
"버스가 한 시간이 넘도록서 있는데 당신들은 바보처럼 기다리기만 할 겁니까? 이유가 뭔지 알아 봐야죠."
그러자 그때까지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던 그 힌두교인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운전사가 없으니까요."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운전사는 그곳에 도착한 순간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대답은 그런 멍청한 게 아니었다. 나는 마치 그 인두인 때문에 버스가 움직이지 않기라도 하는 것 처럼 따져 물었다.
"그렇다면 운전사가 어디로 갔는지 밝혀 내야 할 게 아닙니까? 갑자기 배탈이 나서 쓰러 졌는지, 아니면 옛날 동창생이라도 만난 겁니까?"
그때 더욱 화를 돋우는 대답이 버스 앞쪽에서 들려왔다.
"맞아요. 운전사가 친구를 만났어요. 둘이서 저쪽 찻집으로 갔어요."
나는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ㆍㆍㆍㆍㆍ
그때 그 힌두교인 남자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중 입니까?"
나는 화가 나서, 라니켓으로 간다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또 묻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갈 예정 입니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 엉뚱한 인도인의 호기심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퉁명스럽게 내 뱉았다.
"그 다음엔 다시 남쪽으로 내려 올 거예요. 그래서 뉴델리에 들렀다가 며칠 뒤 우리 나라로 돌아 갈 겁니다. 이제 됐습니까?"
"그럼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갑니까?"
"그거야 아직 모르죠. 또 인도에 올지도 모르고, 네팔로 갈 수도 있고. 하지만 오늘 라니켓에 도착하는 것 조차 불확실한 마당에 나중의 일을 어떻게 안단 말이오?"
그러자 그 힌두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린 우리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잘 알지 못 합니다. 그러니 서둘러 어딘가로 가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말문이 막혔다. 곁에 서서 한 시간이 넘도록 내 영혼을 꿰뚫어 본 이 남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버스는 떠날 시간이 되면 정확히 떠날 겁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한다 해도 신이 정해 놓은 순서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조용히 덧 붙였다.
"여기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든지,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갖든지 둘 중 하나 입니다. 당신이 어느 쪽을 선책하더라도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왜 어리석게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쪽을 택하겠습니까?"
ㆍㆍㆍㆍㆍ
마침내 나타날 시간이 되자 운전사는 미안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타났고, 떠날 시간이 되자 버스는 떠났다. 그리고 나는 수천년 전부터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라니켓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삶이 정확한 질서에 따라 진해되고 있는데, 내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한 두 시간 늦었다고 해서 불평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일을 받아 들이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영혼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싣고 버스는 7천8백 미터의 난다 데비 히말라야의 품안으로 성큼 달려 들어갔다.
- 영혼의 푸른 버스 中...
나는 또 다시 쓸모없는 피리를 사고 싶지 않아서 노인에게 10루피(300원) 정도 적선하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10루피짜리를 꺼낸다는 것이 그만 덜렁 1백 루피짜리 종이돈이 나오고 말았다. 내가 아차 하는 사이에 1백 루피는 노인의 재빠른 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인은 종이돈을 꽉 움켜 쥔 손을 합장을 하고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아, 이런 고마우실 데가! 신께서 틀림없이 당신을 기억하실 겁니다. 나 또한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연신 합장한 손을 이마 위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이미 때는 늦어서 돌려 달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맥없이 1백 루피를 빼앗긴 터라 속이 쓰렀지만 내색할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자비스런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더 손해를 보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었다.
ㆍㆍㆍㆍㆍ
그것은 창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눈을 부비며 창문을 열자 베란다 밑에 어제의 그 노인이 피리를 불며 서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얼른 또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가락이 긴, 아침에 듣는 인도 전통의 라가 곡이었다. 나는 순간 기가 막혀서 창문을 도로 닫았다. 어제 1백 루피를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서 흥정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금방 쪼개져버릴 피리를 떠 넘기고 또 다시 거금을 우려 낼 계획이었다. 나는 고약한 노인네 때문에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창문을 닫은 뒤에도 피리소리는 멎지 않았따. 하는 수작은 미워도 피리 부는 솜씨는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타일러서 보낼 생각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노인은 합장을 하며 내게 아침 인사를 했다.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보시오. 어제 그 만큼 돈을 줬으면 됐지 왜 또 와서 이러는 거요? 난 분명히 말하지만 피리를 살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어서 가시오."
그러자 노인 말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녜요? 어서 가세요. 더 이상 내게서 뭘 뜯어낼 생각이랑 하지 말아요."
노인이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난 당신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당신의 방 앞에 와서 피리를 불어 주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난 그것 말고는 당신한테 해 줄 것이 없거든요."
노인의 진진한 표정을 보고서 순간 내가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노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돈을 더 우려내려고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내가 준 돈에 고마움을 느껴 뭔가 보답을 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노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것이 곧 밝혀졌다. 그는 내가 그 갠지스 강가에 머무는 닷새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내 방 앞에 와서 필릴리 필릴리 피리를 불었다. 피리소리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면 미명을 헤치고 갠지스 강 위로 오렌지색 태양이 떠 오르고 있었다. 노인이 불어주는 피리곡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롭고, 뭔가 다른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다.
마음이 내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1백 루피, 약 3천원 정도를 적선한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노인은 내게 작은 베풂에도 보답하는 자세를 가르쳤고, 가난하지만 아직은 부유함을 잃지 않은 마음을 전해 주었다.
- 피리부는 노인 中...
어느날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형이 죽었는데 이 명상센터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가? 다들 앞으로의 일을 염려하고 있고,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그러자 스와미 아난다는 대답했다.
"내가 왜 걱정을 해야 하는가? 이 명상센터는 내 소유가 아니다. 그런데 왜 내가. 내 소유가 아닌 것을 놓고 미래를 염려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스승은 우리에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살라고 가르쳤지 않은가?"
그의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이 세상에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란 없음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명상센터에 오지 않았던가. 미래에 살기보다는 '지금 여기'에 살기 위해 온갖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았던가. 다들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겼던 스와미 아난다는 어느새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스와미 아난다의 그말은 나한테도 큰 지침이 되었다. 상황의 변화가 생기고 내 곁에 머물렀던 것이 떠나갈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으려고 할 때마다, 나는 스승의 어떤 가르침보다도 스와미 아난다의 그 말을 깨우침의 거울로 삼았다.
"그것은 내 소유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내거 왜 걱정해야 하는가? 스승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라고 가르쳤지 않은가?"
- 바보와 현자 中...
타지마할은 파리의 에펠탑처럼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그 아름다움과 신비는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인도를 점령한 모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그이 아내 뭄 타즈는 열네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마지막 열다섯번째 아이를 낳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샤 자한은 죽은 아내를 추억하기 위해 타지마할이라는 이 역사적인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이기 이전에 타지마할은 예술의 완성품이다. 그것을 짓기위해 인도 전역과 중앙 아시아로부터 2만 명의 인부가 동원 되었고, 프랑스 보르도의 건축가 오스틴과 이탈리아 베니스의 건축가 베로네오가 건물의 장식을 담당했다. 주요 건축은 이란의 시라즈 출신의 이사 칸이 맡았다. 건축은 1631년에 시작되어 1653년에 완성 되었다.
어쨌든 타지마할을 구경하게 돼서 나는 행복했다. 마침 보름달이 다가 왔으므로, 밤에 다시 와서 구경하기로 했다. 흰 대리석의 타지마할은 보름달 아래서 볼 때 그 미학이 완성된다고 하지 않는가. 밤에 보면 허공에 떠 있는 신비의 궁정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ㆍㆍㆍㆍㆍ
아루나찰라 산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라마나 마하리쉬는 <마하리쉬와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은 자만심에 차 있는 사람과 가장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신을 필요로 하지만, 자만심에 찬 사람은 신 없이도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오렌지 세 알 中...
다음 날 아침, 나는 미스터 씽의 가족과 함께 럭나우 박물관을 구경했다. 우리는 박물관 앞 뜰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나 때문에 미안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그는 자기 집에 귀한 손님이 왔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미스터 씽은 덧 붙였다.
"신은 나에게 우정과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신께서도 우리의 만남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러면서 미스터 씽은 덧 붙였다.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난 다만 신의 존재를 믿기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 입니다. 신은 나의 목표가 아니라 나의 기준입니다."
- 미스터 씽 中....
그렇게 일주일으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저녁 그 이상한 여인숙 주인에게서 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오늘은 뭘 배웠소?"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세뇌가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 쯤 지났을 때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그것은 바라나시를 떠나 인도의 다른 도시들로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딜 가든지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그것을 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숙 주인은 좋은 스승이었다.
- 오늘은 뭘 배웠지? 中...
그렇게 모두들 한 마디씩 했다. 형제 승려들의 말을 경청한 노승은 마침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 말처럼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고 수행하면 많은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 입문할 때 어려운 중생을 돕고 구제하는 데 평생을 바치겠다고 맹세에 맹세를 거듭 했거늘, 이제 나이 먹어 아무 쓸모 없게 된 이 늙은이 눈 앞에서 힘 없는 생명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걸 모른 척하란 말인가? 눈을 감고 마음을 닫은 채, 중생을 도우라는 관세음보살의 가르침만 외우고 있으라 말인가?"
노승의 간단하고 분명한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승려들 중 누구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 우리 집에 갑시다 中...
밀려오는 소떼들 틈을 비집고 샤부는 요령있게 릭샤를 몰면서 말했다.
"산스크리트 어(고대 인도어)에선 인간을 '둘라밤'이라고 하죠. 둘라밤은 얻기 힘든 기회라는 뜻 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매우 드문 기회이니까요. 생물체가 인간으로 환생하려면 8천4백만 번의 윤회를 거듭해야 하죠."
여든 네 번도 아니고 8천4백만 번의 윤회라! 그 말을 들으니 유명한 인도 설화가 생각났다.한 사람이 신전에 바치기 위해 염소를 끌고 갔다. 제사장이 염소의 목을 치려고 칼을 높이 쳐든 순간 염소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제사장이 염소에게 웃는 이유를 묻자 염소는 말했다.
"이제 난 서른 세 번만 더 죽으면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오."
과연 인도의 염소다운 대답이 아닌가.
- 전생에 나는 인도에서 中...
"나마스카, 오늘은 또 어딜 갈 겁니까?"
나는 입술을 가르켜 보이며 말했다.
"너무 돌아 다녀서 입술이 다 부르텄어요. 이젠 볼 만큼 봤고 하니까 오늘은 그냥 인도문 앞에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 할래요."
그러자 가게 주인이 말했다.
"이제야 정말로 여행하는 법을 터득했군요. 좋습니다. 나도 함께 갑시다."
그렇게 해서 그날 나는 그 가게 주인과 함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인도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인도문 앞 해변가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행인들을 구경했다. 피리를 불어대는 코브라 아저씨도 보았고, 시골에서 올라 온 촌스런 인도인들도 보았다. 그리고 성지 참배 왔다면서 허리에 돈가방 차고 인도문 앞을 기웃거리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만났다.
ㆍㆍㆍㆍㆍ
이튿날 나는 뭄바이를 떠났다. 배낭을 지고 길을 나서는 내게 가게 주인이 물었다.
"나마스카 , 오늘은 어디로 갈 겁니끼?"
나는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야죠. 꼭 뭘 구경하러 온 건 아니니까요."
가게 주인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디로 가든지 너무 자신을 이리 저리 끌고 다니지 마시오. 한 장소에 앉아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좋은 여행이 되길 빌겠소. 그럼 잘 가시오. 나마스카!"
나마스카는 인도인들의 인사말로 '당신 속의 신에게 절을 한다'는 뜻이다.
- 나마스카 中...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나라를 떠나는 자는 철학자이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무목의 충돌에 의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장에 불과하다고 고울드는 말했다. 나는 그런 방랑자가 되고자 노력했다. 인더스 강가에서 탁발승들이 오네시크리토스에게 반문했듯이, '타인이 누구인가를 묻기전에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반문해 보는 자오가 나에게는 다름아닌 인도였다. 모든 가주말 나무 아래가 곧 인도였다. 삐걱대며 지나가는 수레 라따가 인도였다.
그곳에서 나는 때로 당혹스러웠고, 어지러웠으며,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무서워 도앙치기도 했다. 허무하거나, 존재 밑바닥까지 행복하기도 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서 나 자신과 마주 서 본 적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인도였다.
어떤 이들은 인도는 자기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단언한다. 그러니 우리는 굳이 어디로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이상학적 관념의 비약을 꾀하기 전에, 허름한 여인숙의 창문을 열어 젖히고 아침의 인도와 마주하는 것이 나는 좋았다. 아열대의 공기, 이상한 새들, 꽃과 차의 향기, 신전의 인상적인 지붕들, 사리를 휘감고 광활한 들판 너머로 신기루처럼 사라져가던 여인들, 그러한 것이 나는 좋았다.
내 인생이 황금기는 여행에 있었으며, 특히 인도 여행은 그 황금기의 열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삶을 배웠고, 세상을 알았다. 밤을 지나 보내고, 여인숙 문을 나서면 어디나 인도였다. 벌써부터 경적을 울려대는 릭샤와 소떼와 해변으로 똥 누러 가는 인도인들에게 나는 큰 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곤 했다.
"굿모닝 인디아!"
- 굿모닝 인디아 中...
인도의 영적 스승 사티야 사이 바바는 말했다.
"사람들은 곧잘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를 초월하는 자세가 더 큰 힘이다."
"노 프라블럼!"
_ 20140906 _
☞ 릭쌰 _Rickshaw : 바퀴 셋 달린 자동차(오토릭쌰, 택시), 바퀴 셋 달린 자전거(인력거)
☞ 만트라 _Mantra : 기도 또는 명상중에 반복되어 지는 기도, 주문.
☞ 크리쉬 _Krrish : 인도의 슈퍼 히어로.
☞구루 _Guru : 정신적인 지도자. (북부 인도의 시크교의 지도자)
☞ 라가 _Raga :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의 고전 음악에서 사용하는 즉흥연주 및 작곡법의 선율구조.
토요일.
아침에 회사에서 퇴근하고 여유있게 쉬면서 책을 다 읽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강릉을 향해 출발을 하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회사를 나가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밤에 근무를 하고도 장거리를 운전을 해도 거뜬하게 버티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도 무리를 하면 할 수는 있다는 정신력은 있는데 체력에 자신이 없다.
ㅎㅎㅎ
원래는 '하버드의 생각수업'을 빌려 올려고 했는데 대출중이라서 예약을 하고는 이 책을 빌려왔다.
가을이라는 달을 맞아 소설책이 아닌 조금은 자신을 마주 볼 수 있는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골랐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면서도 여행을 떠나기도 좋은 계절이다.
혼자서든 둘이서든...
작가의 인도 여행기.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 여러 분류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적어 놓은 책이다.
무지 넓은 땅 덩어리의 인도.
무지 넓은 땅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인도인.
많은 사람들 만큼이나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도인.
이들을 만나는 작가의 모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편안하게 움직이는 여행, 잘 짜여진 여행이 아니라...
일부러 고생을 하면서도 많은 시간을, 많은 사람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행을 선택한 작가의 여행이다.
외국어를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능력?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능력?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 이 있다면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
ㅎㅎㅎㅎㅎ!
뜻대로 하고 싶다고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는 함정이 있지만...
...
지나고 보면 아름다웠다 싶은 것 두 가지.
지나고 보면
아름다웠다 싶은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청춘이다.
이 둘은 진행 중일 때는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천천히 미소로 바뀌면서 재미있는 추억이 된다.
고생이 심할 수록 이야깃거리는 많아지게 마련이다.
- 홍영철의 《 너는 가슴을 따라 살고 있는가 》중에서.
_ 20140911 _
'바람개비 >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버드의 생각수업 _ 후쿠하라 마사히로, 김정환 옮김 / 2014. 03. 10 / (주)메가북스 (0) | 2014.09.22 |
---|---|
외로워서 완벽한 _ 장윤현 / 2012.03.21 / (주) 쌤앤파커스 (0) | 2014.09.16 |
초인의 전설 1~3 _ 이원호 _2002년 11년 20일 _ 도서출판 은행나무 (0) | 2014.09.01 |
치우천왕기 6 <자오지 한웅> / 이우혁 _ 문학동네, 2011년 5월 7일 출간 (0) | 2014.08.26 |
치우천왕기 5 <음모의 부할> / 이우혁 _ 문학동네, 2011년 5월 7일 출간 (0) | 2014.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