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일 : 2014년 09년 14일 ▷ 반납일 : 2014년 09년 28일.
예약한 책을 기다리다 연락이 없어 무작정 도서관으로 갔다.
월요일에는 정기 휴일이라 일요일인 오늘 가서 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읽을 책을 빌려 오는 것이 낫겠다 싶어 무작정 갔다.
빌릴 책을 3가지 정도 적어서 갔는데...
가기전에 책이 있는지, 대출 가능한지 알아보고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대출되어 있는 책이 1권. _7년의 밤, 없는 책이 1권. _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마지막으로 준비한 이 책만 놓여 있었다. (바로 앞에, 바닥에 있는 책을 찾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 버렸다. ㅎ)
수필집(?)을 읽어서 소설책을 읽고 싶었는데... 또 다시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같이 간 아들의 책도 빌려 왔는데... 벌써 다 읽고 나보고 반납 하라고 책을 수~욱 내민다.
학교에서 빌려 본 책인데 마지막 편이 없어서 휴대폰으로 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하고 같이 갔다.
제목이... '고양이의 전사들, 6편.'
400쪽이 넘는 제법 두꺼운 책인데... 속도법으로 읽었나? ㅎ
책 속으로...
예약한 책을 기다리다 연락이 없어 무작정 도서관으로 갔다.
월요일에는 정기 휴일이라 일요일인 오늘 가서 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읽을 책을 빌려 오는 것이 낫겠다 싶어 무작정 갔다.
빌릴 책을 3가지 정도 적어서 갔는데...
가기전에 책이 있는지, 대출 가능한지 알아보고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대출되어 있는 책이 1권. _7년의 밤, 없는 책이 1권. _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마지막으로 준비한 이 책만 놓여 있었다. (바로 앞에, 바닥에 있는 책을 찾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 버렸다. ㅎ)
수필집(?)을 읽어서 소설책을 읽고 싶었는데... 또 다시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같이 간 아들의 책도 빌려 왔는데... 벌써 다 읽고 나보고 반납 하라고 책을 수~욱 내민다.
학교에서 빌려 본 책인데 마지막 편이 없어서 휴대폰으로 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하고 같이 갔다.
제목이... '고양이의 전사들, 6편.'
400쪽이 넘는 제법 두꺼운 책인데... 속도법으로 읽었나? ㅎ
책 속으로...
한 음악가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 자신이 얼마만큼 음악적 역량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면 일반 청중들은 그저 잘 친다고 생각 하지만 직접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더 자세하게 평가할 수 있고 직접 그 곡을 쳐 본 사람들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지 자기 영역을 깊이 파고드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가 따로 있다.
- 서울시립 교향악단 상임 작곡가 진은숙.
사랑하면 이룰 수 있는 높다란 경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스스로를 엄중히 단속하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사랑을 키우고 확인하는 과정은 고되지만, 더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게도 해 준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맹목이 사랑의 어둠이라면 높은 안목은 사랑의 빛이자 힘인 셈이다.
나는 그때 외로웠으나 돌아보면 그건 외로워서 오히려 더 좋은 시간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신나게 일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도 좋다. 하지만 행복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그 이외의 감정이나 생각이 채워질 수 없다. 반면 홀로 외로워 텅 빈 마음은 처음엔 쓸쓸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충만해진다. 그처럼 빈 곳엔 채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적한 외로움 속에서 나는 찬찬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커피에 대한 사랑도 차곡차곡 쌓아 나갈 수 있었다. 홀로 남아서, 외로워서 완벽한 순간이었다.
《프롤로그, 돌아보면 외로워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中...
순간의 위로... 헤아리다.
그제야 두 주먹을꽉 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새로운 땅에 와서도 나는 여전히 지난 추억에 묶여 있었다. 두 주먹 꽉 쥐고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 자세로 부다페스트를 향해서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진한 커피 한 모금이, 그 낯설고 강한 맛이 온 몸에 퍼지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주먹을 펴고 손을 들어 웨이터에게 커피 한 잔을 더 시켰다. 웨이터가 새로운 손님이라도 맞이하는 양 여전히 반갑게 웃었다. 그리고 두 번째 커피가 도착했다. 다시 한 번, 에스프레소였다. 그들에겐 별 다른 조건을 달지 않는 커피는 당연히 에스프레소인 모양이었다. 그 커피를 마시며 나는 처음으로 부다페스트로 들어가는 문 하나를 열었다.
· · · · ·
그리고 내 두 손이 잘 비어 있는지, 새로운 발견을 선사 할 그 겹겹의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혹시 새로운 세계가 낯설고 두려워 움츠리고 있다면 마음을 열고 발을 내 딛자. 낯섦과 두려움은 설렘과 떨림의 다른 이름이곤 하니까. 그 세계는 당신에게 이제껏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게 할 테니까 말이다.
《낯섦과 두려움은 설렘과 떨림의 다른 이름.》中...
이발소 그림뿐일까, 우리 일상 속의 우연도 되풀이되다 보면 특별한 의미가 되곤 한다. 머피와 샐리의 법칙이 그렇고, 징크스가 그렇다. 사람들은 언제나 우연의 반복 속에서 필연을, 운명을 찾고 싶어 한다. 신의 특별한 결정에 따라 자신의 일상이 그저 통속적인 이발소 그림이 아니라 전시장의 의미 있는 예술품으로 거듭나길 원하기도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특히 그렇다. 연인들은 단순한 우연 속에서 두 사람만의 특별한 운명을 읽어내곤 하니까. 또 힘들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사람들은 삶에서 어떤 필연, 운명의 기미를 읽어내려 애쓴다. 나는 그런 의미 부여를 과도한 낭만이나 자신감의 부족, 허약함의 표시라고 폄훼해 버리고 싶진 않다. 불확실성으로 뒤덮인 인생을 살아나가는 동안 그 정도의 자기 위안은 필요하니까. 내 인생의 어떤 순간, 어느 사건에 나 자신이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 두겠다는데 누가 뭐랄 텐가. 누구에게나 우연이 마침내 필연으로 여겨지는 순간은 있을 것이고, 운명처럼 여겨진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에스프레소의 강력한 마법을 믿는다. 그러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절박하고 허약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또 다시 그 마법에 의지하고플 것이다. 쓴 맛을 왈칵, 듬뿍 안겨준 뒤에 아주 인색하게, 아주 잠깐 달콤한 맛으로 위로해 주는 에스프레소는 인생을 참 많이도 닮았다. 실패의 좌절감, 위기의 순간 느껴지는 긴장감, 그 속에서 거짓말처럼 솟는 용기까지· · · · ·. 지난하고 불확실하기만 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우연을, 운명을 마주할 때 삶은 달콤해진다. 그러니 당신, 그 스쳐 지나가는 달콤함을 맛보고 싶다면, 설탕 없는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견뎌보길.
《강렬한 쓴 맛 끝엔 달콤함이 숨겨져 있다.》中...
때로 삶이 버거운 날들이 찾아온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고, 괜히 사라이 싫고, 세상에 내가 발 디딜 곳은 없는 것 같고, 아침 햇살조차 기분 나쁘게 느껴지고, 일은 쌓였지만 손가락 움직일 힘초자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주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 날. 우리는 대개 금세 마음을 가다듬고 회복하지만, 때로는 속절없이 바닥없는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 우울증은 바로 그렇게 어둠에 갇혀버리는, 마음의 병이다.
기분이 조금 우울한 것과 병으로서의 우울증은 많이 다르다. 그건 주변에 풀이 우거진 얕은 연못과 늪처럼, 얼핏 보기에만 비슷해 보일 뿐이다. 기분이이 저조하지만 때가 되면 무얼 먹을지 궁리한다거나, 지금 진행 중인 일을 어떻게 매듭지을지 고민하면서 그럭저럭 일상을 꾸려나간다면 그것은 늪이 아니라 그저 야트막한 연못에 발을 적신 상태, 그래서 조금 눅눅하고 불편한 상태라고나 할까. 반면 우울증은 깊고 복잡해 한 번 빨려 들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늪과도 같다.
가시나무 덤불숲에 사로잡힌 듯한 아픔을 느끼는데 고작 커피 한 잔이라니, 그 무슨 감상적인 태처법이냐 물을지 모르지만 · · · · ·. 우울해서 더 예민해지는 그 순간엔 힘 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 희망을 잃지 말라는 귀를 때리는 응원가 대신 그 여린 붕대가 더 낫겠다 싶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약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듯, 우울증 바이러스가 덮쳐올 때 우리 조용히 커피를 마시자. 표정이 어두운 내 곁의 누군가에게 조용히 함께 커피 한 잔 마시자고 권하는 것도 좋겠다. 그 따스한 커피 한 잔이 어두운 시절을, 우울을 견뎌내는 힘이 될 테니.
《우울을 견뎌내는 힘》中...
실패가 두려운 이유는 실패 후 찾아 올 소외감과 외로움 때문이다. 물론 최근 실패한 사람, 최근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은 외로울 틈이 없다.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려 한다. 심지어는 오래전에 소식이 끊긴 이들에게서조차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그들의 위로와 격려가 진심인지, 호기심인지, 자기 위안의 한 방법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실패의 나날이 길어지고 불행의 고리가 쉽게 끊길 것 같아 보이지 않을 때 사정은 달라진다. 연락이 조금씩 뜸해지고, 일부러 피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렇게 조금씩 인간관계의 거품이, 군살이 제거된다. 둔감한 사람조차도 타인의 실패나 불행에 대한 직감은 비교적 예리하다. 사람들은 언제쯤, 난파선 같은 이의 곁을 떠날지를 섬세하게 결정하고 실행한다.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맺어졌던 관계는 이렇게 걸러지고 또 걸러진다. 이른바 관계 다이어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커피 영화를 준비하면서 커피 공부를 좀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어떤 커피가 맛있냐고들 묻는다. 대체로 나는 알고 있는 범위네서 최선을 다해 이런저런 커피 이야기를 해 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쓰라리고 힘들 때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더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다. 습기 찬 시절, 마음속에 곰팡이처럼 번져가던 외로움을 생략한 채로는 제대로 그 맛을 전달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실패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얻는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가 실패나 불행을 이야기 하려 든다면, 아마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를 좀 도와달라거나 위로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대신, 그들은 그저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고 한다.
실패는 겪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실패나 불행의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이 조금씩 거리를 두고 물러난다는 것을 실감할 때, 또 그 자격지심 때문에 예전처럼 선뜻 별 생각없이 커피 한 잔 마시자는 말을 건네기가 힘들어질 때 와락 외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외롭기 때문에, 실패했기 때문에 더 잘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는 것을 안다. 무례를 견디는 순간의 커피 한 잔이 얼마나 생생하게 맛있고 고마운지, 시 한 편과 음악 한 곡이 얼마나 왈칵 다가와 위로가 되는지 말이다. 그런 것들을 알게 된 후엔, 다른 이의 불행한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세상의 슬픔을, 삶의 한 순간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외롭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中...
지치고 힘든 일이 넘쳐날 때,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움크려 숨고 싶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울을 향해 웃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완벽히 즐거워 보이면 나는 안심한다. 내 스트레스와 상처가 다른 이에게 전염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아무에게도 내 슬픔을 떠 넘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
상처의 기억은 카타콤 _Catacomb_ 같은 지하 묘지처럼 더럽고 아프다. 그 퇴폐한 공기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지금 내가 머무는 곳까지 스며든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자신보다 권위 있는 자에게 압박을 받은 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로 그 독을 흘려 보낸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입은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린 자녀들에게까지 두려움이 퍼지게 한다. 사랑을 하다가 배신이나 희롱을 당한 이들은 다음 사랑에게 함부로 그 고통을 풀어대기도 한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아픔을 사람에게 푼다. 만약 가해자에게 그 상처를 돌려 준다면 씁쓸하되 어느 정도 공평한 게임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흔은 엉뚱한 곳으로 튀게 마련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들고 있던 블랙커피에 나를 투영해 보았다. 블랙커피만큼 검은 상처가 나 자신도 모르는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 살펴 보았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흉터더라도 우유를 섞은 카페라떼처럼 잘 여물어 날카로운 가시로 변모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따금 블랙커피가 담긴 커피 잔을 가만히 내려다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단단한 가시로 변모해 남을 괴롭히는지 지켜 보아야 하니까 · · · · ·. 때로는 그렇게 커피 한 잔이, 우리의 짙은 상흔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상흔은 엉뚱한 곳으로 튀게 마련이다.》中...
그렇게나 다양한 술, 담배, 커피의 세계 속에서 나와 같은 것을 즐기는 이를 만났을 때는 반가움이 앞서게 마련이다. 서로가 동일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어서일까. 나의 사소한 일상에 고개를 끄덕여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그것이 소수가 즐겨찾는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나와 동일한 기호식품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은, 내 취향이 그리 외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술과 담배와 커피는 때로 너무 입맛을 땡긴다. 그 '땡기는' 느낌의 치명적인 작용이 바로 중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내 삶의 깊숙한 자리를 차지해 간다. 어쩌면 그건 나이 탓이기도 하다. 나의 삶이 조금씩 무게를 더해가고, 그 무게를 어디엔가 기대어 놓을 수 없을 때 커피와 담배와 술은 작은 안식처가 된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지날수록 조금 더 자주, 이것들을 찾는 것이다.
잠시나마 내게 기대어 쉴 공간을 만들어 주는, 자투리 여유를 제공하는 커피 한 잔. 그 작은 만족감에 기대는 이가 비단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커피에 살짝 기대어 본다. 설탕을 타지 않는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즐기는 사람들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길 꿈꾸며 · · · · ·.
《어른들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中...
위로...
헤아리는 것.
_ 20140917
에스프레소...
갑자기 마시고 싶다.
어제 회사에서 책을 읽다가 책을 덮고 인터넷을 뒤쳐서 에스프레소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름의 뜻, 만드는 방법, 만드는 기계 및 가정용의 모카포트등...
내가 즐겨 마시는 커피는 그냥 '카누 _KANU_'중 가장 진한 '다크 로스트'...
회사나 야외에 나갈 때도 일부러 챙겨 가는데 없으면 _아쉬우면 가리지 않고 마신다. ㅎㅎㅎ
지금도 마시면서 글을 적고 있다.
- 서울시립 교향악단 상임 작곡가 진은숙.
사랑하면 이룰 수 있는 높다란 경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스스로를 엄중히 단속하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사랑을 키우고 확인하는 과정은 고되지만, 더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게도 해 준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맹목이 사랑의 어둠이라면 높은 안목은 사랑의 빛이자 힘인 셈이다.
나는 그때 외로웠으나 돌아보면 그건 외로워서 오히려 더 좋은 시간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신나게 일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도 좋다. 하지만 행복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그 이외의 감정이나 생각이 채워질 수 없다. 반면 홀로 외로워 텅 빈 마음은 처음엔 쓸쓸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충만해진다. 그처럼 빈 곳엔 채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적한 외로움 속에서 나는 찬찬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커피에 대한 사랑도 차곡차곡 쌓아 나갈 수 있었다. 홀로 남아서, 외로워서 완벽한 순간이었다.
《프롤로그, 돌아보면 외로워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中...
순간의 위로... 헤아리다.
그제야 두 주먹을꽉 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새로운 땅에 와서도 나는 여전히 지난 추억에 묶여 있었다. 두 주먹 꽉 쥐고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 자세로 부다페스트를 향해서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진한 커피 한 모금이, 그 낯설고 강한 맛이 온 몸에 퍼지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주먹을 펴고 손을 들어 웨이터에게 커피 한 잔을 더 시켰다. 웨이터가 새로운 손님이라도 맞이하는 양 여전히 반갑게 웃었다. 그리고 두 번째 커피가 도착했다. 다시 한 번, 에스프레소였다. 그들에겐 별 다른 조건을 달지 않는 커피는 당연히 에스프레소인 모양이었다. 그 커피를 마시며 나는 처음으로 부다페스트로 들어가는 문 하나를 열었다.
· · · · ·
그리고 내 두 손이 잘 비어 있는지, 새로운 발견을 선사 할 그 겹겹의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혹시 새로운 세계가 낯설고 두려워 움츠리고 있다면 마음을 열고 발을 내 딛자. 낯섦과 두려움은 설렘과 떨림의 다른 이름이곤 하니까. 그 세계는 당신에게 이제껏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게 할 테니까 말이다.
《낯섦과 두려움은 설렘과 떨림의 다른 이름.》中...
이발소 그림뿐일까, 우리 일상 속의 우연도 되풀이되다 보면 특별한 의미가 되곤 한다. 머피와 샐리의 법칙이 그렇고, 징크스가 그렇다. 사람들은 언제나 우연의 반복 속에서 필연을, 운명을 찾고 싶어 한다. 신의 특별한 결정에 따라 자신의 일상이 그저 통속적인 이발소 그림이 아니라 전시장의 의미 있는 예술품으로 거듭나길 원하기도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특히 그렇다. 연인들은 단순한 우연 속에서 두 사람만의 특별한 운명을 읽어내곤 하니까. 또 힘들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사람들은 삶에서 어떤 필연, 운명의 기미를 읽어내려 애쓴다. 나는 그런 의미 부여를 과도한 낭만이나 자신감의 부족, 허약함의 표시라고 폄훼해 버리고 싶진 않다. 불확실성으로 뒤덮인 인생을 살아나가는 동안 그 정도의 자기 위안은 필요하니까. 내 인생의 어떤 순간, 어느 사건에 나 자신이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 두겠다는데 누가 뭐랄 텐가. 누구에게나 우연이 마침내 필연으로 여겨지는 순간은 있을 것이고, 운명처럼 여겨진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에스프레소의 강력한 마법을 믿는다. 그러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절박하고 허약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또 다시 그 마법에 의지하고플 것이다. 쓴 맛을 왈칵, 듬뿍 안겨준 뒤에 아주 인색하게, 아주 잠깐 달콤한 맛으로 위로해 주는 에스프레소는 인생을 참 많이도 닮았다. 실패의 좌절감, 위기의 순간 느껴지는 긴장감, 그 속에서 거짓말처럼 솟는 용기까지· · · · ·. 지난하고 불확실하기만 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우연을, 운명을 마주할 때 삶은 달콤해진다. 그러니 당신, 그 스쳐 지나가는 달콤함을 맛보고 싶다면, 설탕 없는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견뎌보길.
《강렬한 쓴 맛 끝엔 달콤함이 숨겨져 있다.》中...
때로 삶이 버거운 날들이 찾아온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고, 괜히 사라이 싫고, 세상에 내가 발 디딜 곳은 없는 것 같고, 아침 햇살조차 기분 나쁘게 느껴지고, 일은 쌓였지만 손가락 움직일 힘초자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주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 날. 우리는 대개 금세 마음을 가다듬고 회복하지만, 때로는 속절없이 바닥없는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 우울증은 바로 그렇게 어둠에 갇혀버리는, 마음의 병이다.
기분이 조금 우울한 것과 병으로서의 우울증은 많이 다르다. 그건 주변에 풀이 우거진 얕은 연못과 늪처럼, 얼핏 보기에만 비슷해 보일 뿐이다. 기분이이 저조하지만 때가 되면 무얼 먹을지 궁리한다거나, 지금 진행 중인 일을 어떻게 매듭지을지 고민하면서 그럭저럭 일상을 꾸려나간다면 그것은 늪이 아니라 그저 야트막한 연못에 발을 적신 상태, 그래서 조금 눅눅하고 불편한 상태라고나 할까. 반면 우울증은 깊고 복잡해 한 번 빨려 들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늪과도 같다.
가시나무 덤불숲에 사로잡힌 듯한 아픔을 느끼는데 고작 커피 한 잔이라니, 그 무슨 감상적인 태처법이냐 물을지 모르지만 · · · · ·. 우울해서 더 예민해지는 그 순간엔 힘 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 희망을 잃지 말라는 귀를 때리는 응원가 대신 그 여린 붕대가 더 낫겠다 싶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약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듯, 우울증 바이러스가 덮쳐올 때 우리 조용히 커피를 마시자. 표정이 어두운 내 곁의 누군가에게 조용히 함께 커피 한 잔 마시자고 권하는 것도 좋겠다. 그 따스한 커피 한 잔이 어두운 시절을, 우울을 견뎌내는 힘이 될 테니.
《우울을 견뎌내는 힘》中...
실패가 두려운 이유는 실패 후 찾아 올 소외감과 외로움 때문이다. 물론 최근 실패한 사람, 최근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은 외로울 틈이 없다.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려 한다. 심지어는 오래전에 소식이 끊긴 이들에게서조차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그들의 위로와 격려가 진심인지, 호기심인지, 자기 위안의 한 방법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실패의 나날이 길어지고 불행의 고리가 쉽게 끊길 것 같아 보이지 않을 때 사정은 달라진다. 연락이 조금씩 뜸해지고, 일부러 피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렇게 조금씩 인간관계의 거품이, 군살이 제거된다. 둔감한 사람조차도 타인의 실패나 불행에 대한 직감은 비교적 예리하다. 사람들은 언제쯤, 난파선 같은 이의 곁을 떠날지를 섬세하게 결정하고 실행한다.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맺어졌던 관계는 이렇게 걸러지고 또 걸러진다. 이른바 관계 다이어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커피 영화를 준비하면서 커피 공부를 좀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어떤 커피가 맛있냐고들 묻는다. 대체로 나는 알고 있는 범위네서 최선을 다해 이런저런 커피 이야기를 해 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쓰라리고 힘들 때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더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다. 습기 찬 시절, 마음속에 곰팡이처럼 번져가던 외로움을 생략한 채로는 제대로 그 맛을 전달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실패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얻는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가 실패나 불행을 이야기 하려 든다면, 아마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를 좀 도와달라거나 위로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대신, 그들은 그저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고 한다.
실패는 겪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실패나 불행의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이 조금씩 거리를 두고 물러난다는 것을 실감할 때, 또 그 자격지심 때문에 예전처럼 선뜻 별 생각없이 커피 한 잔 마시자는 말을 건네기가 힘들어질 때 와락 외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외롭기 때문에, 실패했기 때문에 더 잘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는 것을 안다. 무례를 견디는 순간의 커피 한 잔이 얼마나 생생하게 맛있고 고마운지, 시 한 편과 음악 한 곡이 얼마나 왈칵 다가와 위로가 되는지 말이다. 그런 것들을 알게 된 후엔, 다른 이의 불행한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세상의 슬픔을, 삶의 한 순간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외롭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中...
지치고 힘든 일이 넘쳐날 때,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움크려 숨고 싶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울을 향해 웃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완벽히 즐거워 보이면 나는 안심한다. 내 스트레스와 상처가 다른 이에게 전염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아무에게도 내 슬픔을 떠 넘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
상처의 기억은 카타콤 _Catacomb_ 같은 지하 묘지처럼 더럽고 아프다. 그 퇴폐한 공기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지금 내가 머무는 곳까지 스며든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자신보다 권위 있는 자에게 압박을 받은 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로 그 독을 흘려 보낸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입은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린 자녀들에게까지 두려움이 퍼지게 한다. 사랑을 하다가 배신이나 희롱을 당한 이들은 다음 사랑에게 함부로 그 고통을 풀어대기도 한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아픔을 사람에게 푼다. 만약 가해자에게 그 상처를 돌려 준다면 씁쓸하되 어느 정도 공평한 게임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흔은 엉뚱한 곳으로 튀게 마련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들고 있던 블랙커피에 나를 투영해 보았다. 블랙커피만큼 검은 상처가 나 자신도 모르는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 살펴 보았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흉터더라도 우유를 섞은 카페라떼처럼 잘 여물어 날카로운 가시로 변모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따금 블랙커피가 담긴 커피 잔을 가만히 내려다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단단한 가시로 변모해 남을 괴롭히는지 지켜 보아야 하니까 · · · · ·. 때로는 그렇게 커피 한 잔이, 우리의 짙은 상흔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상흔은 엉뚱한 곳으로 튀게 마련이다.》中...
그렇게나 다양한 술, 담배, 커피의 세계 속에서 나와 같은 것을 즐기는 이를 만났을 때는 반가움이 앞서게 마련이다. 서로가 동일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어서일까. 나의 사소한 일상에 고개를 끄덕여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그것이 소수가 즐겨찾는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나와 동일한 기호식품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은, 내 취향이 그리 외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술과 담배와 커피는 때로 너무 입맛을 땡긴다. 그 '땡기는' 느낌의 치명적인 작용이 바로 중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내 삶의 깊숙한 자리를 차지해 간다. 어쩌면 그건 나이 탓이기도 하다. 나의 삶이 조금씩 무게를 더해가고, 그 무게를 어디엔가 기대어 놓을 수 없을 때 커피와 담배와 술은 작은 안식처가 된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지날수록 조금 더 자주, 이것들을 찾는 것이다.
잠시나마 내게 기대어 쉴 공간을 만들어 주는, 자투리 여유를 제공하는 커피 한 잔. 그 작은 만족감에 기대는 이가 비단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커피에 살짝 기대어 본다. 설탕을 타지 않는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즐기는 사람들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길 꿈꾸며 · · · · ·.
《어른들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中...
위로...
헤아리는 것.
_ 20140917
에스프레소...
갑자기 마시고 싶다.
어제 회사에서 책을 읽다가 책을 덮고 인터넷을 뒤쳐서 에스프레소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름의 뜻, 만드는 방법, 만드는 기계 및 가정용의 모카포트등...
내가 즐겨 마시는 커피는 그냥 '카누 _KANU_'중 가장 진한 '다크 로스트'...
회사나 야외에 나갈 때도 일부러 챙겨 가는데 없으면 _아쉬우면 가리지 않고 마신다. ㅎㅎㅎ
지금도 마시면서 글을 적고 있다.
'바람개비 >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로워서 완벽한 _ 장윤현 / 2012.03.21 / (주) 쌤앤파커스 _ #02 (0) | 2014.10.01 |
---|---|
하버드의 생각수업 _ 후쿠하라 마사히로, 김정환 옮김 / 2014. 03. 10 / (주)메가북스 (0) | 2014.09.22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_ 류시화 / 1997년 5월 10일 1판 1쇄 발행_ 도서출판 열림원 (0) | 2014.09.03 |
초인의 전설 1~3 _ 이원호 _2002년 11년 20일 _ 도서출판 은행나무 (0) | 2014.09.01 |
치우천왕기 6 <자오지 한웅> / 이우혁 _ 문학동네, 2011년 5월 7일 출간 (0) | 2014.08.26 |